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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May 20. 2020

코로나바이러스와 인종차별에 대한 단상


인류는 생존을 위해 혐오를 학습해 왔다는 생각을 문득, 유난히 우글대던 파리를 귀찮다고 죽여대던 날 했다. 원시의 세계에서 인류는 살기 위해서 죽일 수밖에 없었던 오랜 세월을 거쳐, 다름은 경고의 의미로 학습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인류는 더 이상 생존과 상관없는 다름에 대해서 혐오하고 경계한다. 인종, 종교, 성별, 장애, 부와 가난, 정치적 성향, 여타 셀 수도 없이 세세하고 구차한 이유로 서로를 알아가기 전에 미워하기부터 하는 원시의 습관. 이제 버려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민을 오고 나니 우리 가족에게 "인종차별"의 이슈는 뜻밖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게르만 민족의 터전, 다수의 백인들이 움직여 가는 나라의 한 복판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들과 다른 피부 색깔, 머리 색깔, 말, 문화와 습관, 음식, 냄새... 를 가진 이방인이다.


다행히 다정한 마을 O, 는 이방인에 대해 노골적인 거부나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지인들의 경험은 슬프고 적나라했다. 로마에 사는 이상 로마법을 따르려는 본능인지 냄새나 관습 같은 부분은 배우고 그들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나도 모르게 신경을 쓰게 된다.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하니 소수인 쪽이 다수를 맞추는 편이 편하겠다 싶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을 당해도 당당하도록, 또 어른들의 도움을 받도록 교육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민트가 그 일을 당하고 온 것이다. 독일의 학교는 오전에 도시락(대게는 빵과 과일, 채소류)을 먹는 조금 긴 쉬는 시간인 "Brotzeit"가 있다. 그때는 교실에서 나와 건물 밖이나 Aula라고 불리는 커다란 실내 광장(?)에서 아이들이 먹기도 하고 놀기도 하는데, 1학년인 민트 주위를 3-4학년쯤 되는 큰 아이들이 둘러싸고 "Chinesisch, Chinesisch(중국인)!!"라고 부르며 하이파이브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민트는 그게 너무 싫고 귀찮아서 그 아이들에게 주먹질을 하며 쫓아냈다고 한다. 간도 크지... 민트가 워낙 쿨하게 말하기도 했고 진술만 듣자면 이게 괴롭힌 건지 관심을 가진 건지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관심이었다면 이름부터 물었겠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생긴 것만 보고 "중국인"이라고 규정지은 것 자체가 인종차별이었고, 당사자인 민트가 몹시 기분이 상했으므로 두말할 것이 없었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몸으로 상대하지 말고 꼭 친구들 도움을 받아 선생님에게 상황을 설명하라고 했다. 당시 민트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의 독일어도 하지 못할 때라, 부모인 진국과 나는 더욱 마음이 쓰였다. 잊어버릴 만할 때쯤 민트가 씩씩거리며 걔네들이 또 그랬다는 것이다. 이번엔 이야기하며 너무 분통이 터졌는지 울기까지 했다. 선생님한테 미처 말씀은 못 드렸다 길래, 숙제 써 오는 노트에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편지를 가져 간 날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 상황을 설명과 증언을 해 주어 그 아이들을 찾아냈고 한 명 한 명 교실에 찾아가서 직접 사과받고 돌아왔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겼고, 한 교실에 지내는 친구들이 아니라는 점에 안도를 느끼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얼마든지 단지 인종 때문에 어떤 사건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니 씁쓸하기가 프로폴리스 원액 같았다. 프로폴리스는 건강에라도 좋지...


아이들의 선생님 중에서 인종으로 사람을 가르고 불이익을 주고 하는 몰상식한 사람이 없었는데 그것 또한 다행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다행히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 지인들 중에는 선생님의 부당한 대우로 법적 대응까지 심각하게 고려한 경우, 반 아이들이 Whats***(카카오*처럼 쓰는 메신저)에서 따돌리는 경우, 한두 명쯤은 있어야 하는 단짝 친구가 없는 경우.. 등등 무수한 사례들이 즐비하는 것이다.



듣기만 하던 일이 일어난 것은 뮌헨 시내에 나가서 장 보다가 뒤에 줄 서있는 할머니에게 "Du bist Dumm!" (바보야!") 하는 소리를 기어이 들은 순간이었다. 처음 가보는 대형마트였고 채소나 과일류를 직접 무게를 재고 가격표를 붙여오는 시스템이었는데, 군데군데 놓여 있는 저울을 보면서도 평소처럼 지나쳐 계산대에 섰던 것이다. 점원들은 종종 나 같은 사람들이 있는지 매대 근처에 놓여 있는 저울로 가격표를 붙여 계산해 주었는데 뒤에 서 있던 할머니는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독일어도 잘 못하는 나도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Du bist Dumm!"을 시작으로 계산을 끝나고 내가 사라질 때까지 계속 욕(분명 그런 뉘앙스였다)을 해댔다. 그땐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는데, 지나고 나니 너무 분했다. 내가 끼친 불편이 그 정도 이진 않을 거다. 장을 많이 보지 않아서 계산도 금방 끝났다. O 밖은 위험해, 하며 O에 뿌리내리고 싶은 하나의 큰 이유가 생겼다. 이 동네라면 그래도 인종차별에서 조금, 은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경험에서 나온 기대.  



평소엔 잊고 살다가도 한 번씩 누군가에게 무슨 얘기라도 들으면, 누군가에게 따가운 눈빛이라도 한 번 받으면 인종차별의 이슈는 어김없이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곤 했는데... 코로나 19가 시작된 것이다.

초반에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이 세계의 본보기가 될 정도로 이 전염병에 대해 대응을 잘해서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그때도 이미 동양인들에 대한 격한 반응은 시작되고 있었는데, Yellow virus라 부르며 식당, 거리 등 공공장소에 있는 동양인들에게 손가락질하며 "Virus!!"라고 부르거나 물건이나 음식의 판매를 거부하는 일들이 일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는데, 달성군에 확진자가 많이 나왔다며 걱정을 하시는 것이다. 엄마가 사는 곳이 달성군인데!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확진자가 늘어나 학교들은 임시 휴교, 회사는 임시 휴가, 예배는 온라인 예배, 대구로 전국의 의사들이 몰려오고 날마다 몇 백 명씩 검사를 받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북부(이 곳은 독일 남부로 이탈리아 북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에 확진자가 몇 백 명을 넘더니 그때부터는 열몇 명에 그쳤던 독일 확진자도 자고 일어나면 두배, 씩 늘어나 현재 159명에 이르렀다.


지난주에 학교는 방학이었고, 작은 애들은 기침이 심하기에 데리고 있다가 혹시나 싶어 병원에서 유치원에 보내도 된다는 확답을 듣고야 이번 주에 다 같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괜찮냐고 묻는 쪼꼬반 선생님한테 병원 가서 확인했고 지난주보다 훨씬 좋아졌어,라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어정쩡하게 괜찮아.. 하고 대답했다. 뭔가 더 대답을 기다리는 건지 선생님의 눈빛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져서 하루 종일 쪼꼬를 더 데리고 있을 걸 그랬나, 생각했다.


오늘 마트도 가고 기름도 넣는데,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점원들이, 친절하게 인사해 주는 주유소 직원이 정말 너무너무 고마웠다. 어쩌면 그저 자연스러운, 습관 같은 인사인데 과분한 걸 받는 기분이 들었다.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들, 속상한 경험담들 속에서 모두가 무사하길 바라며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다.



부다페스트에서 동굴 관광을 한 적이 있다. 좁은 통로를 함께 지나가며 동굴을 구경하는 것이라 서로의 간격이 좁았다. 중국말을 쓰시는 어떤 분이 트림을 시원하게 연이어 두 번 하시는 것이다. 뒤 따라가던 독일말을 쓰는 두 사람이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확히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뒷담화도 하는 거 같았다. 그 광경을 모두 목격한 순간, 기분이 확 상했다.


"야, 너네도 씨원하게 아무 데서나 코 풀잖아? 그거 아시아에서는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야, 넌 코 풀 때 조심이나 하고 저분이 트림하는 거 불편해하는 거니? 네가 평생 아시아 방문할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숱한 아시아인 앞에서 코 풀었을 텐데?"


하고 따지고 싶었다. 누가 내 앞에서 트림하는 거 나도 싫다. 그렇지만 그게 그렇게 대놓고 기분 나빠할 일인지 잘 모르겠다.

알기 전에 판단하면 쉽게 혐오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기 전에 아무 기준으로 무리를 묶어 버리면 편견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거 아닐까.


상황이 극단으로 치 닿을수록 개인의 한계는 드러나는 것이다. 이 정도 상황에서 너무 위축되지도 말고,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열폭 대신 측은지심을 가져야 나도 한 단계 성숙하는 거겠지. 요즘은 아이들이 잘 크는 것보다 이미 다 커버린 내가 잘 늙는 게 훨씬 어렵고 중요하겠단 생각이 든다.



풍경은 무심히도 아름답다.

존중하고 이해하는 품을 한 뼘 넓히며 이 시간을 지나길.  

오늘 하루도 모두가 무사하길...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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