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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Joy Mar 03. 2023

00_ ...

9월의 날씨가 독일에 살던 중 최악이었다.

내내 흐리고 끝도 없이 비가 왔다. 이미 기온은 겨울 잠바를 입어야 할 정도. 날씨의 횡포에 꼼짝없이 당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 한국에서 돌아온 며칠 반짝 해가 나, 그래, 아직은 9월이었지 안심하던 차였다.


한국에서 에너지를 탈탈 털어쓰고 돌아왔다. 막상 돌아오니 매 끼니를 스스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숨이 턱 막혔다.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최소한의 것만 하며 몇주를 보냈다. 이 상태로 이곳의 긴 겨울을 어떻게 보내야하나. 겨우 살아만 있던 지난 나날들이 다시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이 입학하고, 개학하여 다시 학교에 갔다.

동시에 독일어학원도 다시 시작되었다.


독일어를 한참 멀리했다. 코로나 사태는 적당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고 수백 수천번을 생각한 후에 다시 독일어학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독일어로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Konjunktiv 2, Es wäre schön, wäre ich eine Romanautorin.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답은 같다. 한국에서나 독일에서나.


"그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거잖아!"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두서없이 떠오르는 문장들을 연결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이란게.

정말 소설이라도 쓸라치면, 사전 조사 라는 두 단어가 가슴을 죄어온다. 한국이었다면 사정이 좀 달랐을까?  


그리고 이어지는 응원. 고마우면서도 씁쓸하다.

“조앤롤링도 싱글맘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중에 해리포터를 썼잖아!”

“우리가 나중에 모두 니 책을 읽고 있을지 모르지!”


어쩌면 아주 천천히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학원가기 전에 잠시라도 자려고 했는데, 문장들이 자꾸 머리속을 떠다녔다.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린 것이 6월, 그 후로도 브런치는 계속 독려를 보냈다. 작가님이란 호칭을 써가며, 돌연 사라져버린 너, 돌아오라. 뭐 대강 이런 류다.


한국에 가기 전부터 아니, 아이들이 조금 커 여유가 생긴 시점부터 계속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여전히 한방향으로 내달리지 않고, 빙빙 우회하고 있다.


Etwas tun, statt nur zu träumen.


우회를 하더라도 뭐라도 쓰는 방향으로 해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핸드폰 메모장에 무기력 일지를 썼다.

당연히 정말 무기력 할 때는 활자를 기록하는 일을 해내지 못했다.

지금은 다행히 이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지난 실패를 통해 넘어지더라도 완전히 주저앉지 않는 법을 익힌지도 몰랐다.

이대로라면 긴 겨울을 버틴 후에 아주 작은 것들을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희망이란 달콤하면서도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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