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멀스멀
주의력 결핍/과잉행동 장애(ADHD_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는 주의집중 범위가 부족하고/거나 소아의 연령에 부적절한 과다 행동 및 충동으로 기능 수행 또는 발달에 지장을 주는 경우를 말합니다. (Stephen Brian Sulkes, MD, Golisano Children’s Hospital at Strong, University of Rochester School of Medicine and Dentistry_검토/개정일 2024년 4월 7일)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이하 ADHD)는 아동기에 발생하는 가장 흔한 신경발달장애 가운데 하나로 보고하고 있다.『ADHD 전문가를 위한 치료 지침서』(이성직, 2022)
민트의 입학으로 우리는 본격적으로 학부모가 되었다. 아직 독일 생활 적응도 안 되었을 즈음이라, 학부모가 된다는 것에 대한 실감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닥치는 대로 겪어 나가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민트의 입학식 날이 쪼꼬의 유치원 첫 등원 날이었고, 독일의 유치원은 적응 기간이라는 것이 체계적인 시간 계획으로 존재한다. 첫날엔 엄마(또는 아빠나 기타 양육자)와 함께 유치원 공간과 사람들을 익힌다. 한, 두 시간 엄마와 함께 유치원 공간에 머물다 오는 것이다. - 다음에 유치원 적응 기간에 대한 글을 따로 다뤄볼 수 있기를 바라보며 첫날까지만... - 아이의 첫 학교 입학인데, 함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진 않았지만, 아빠가 민트와 함께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이런 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아무래도 할머니, 할아버지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침 우리 집에 놀러 와 있던 친구 다이애나(이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시다면 [브런치 매거진/이상한 학교의 이상한 앨리스_나의 친구 다이애나]를 읽어주세요) 덕분에 어수선한 입학날의 진국과 그 앞에 매달려 있는 마빈, 그리고 어색해하던 민트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입학식은 그리 길지 않았고, 첫날의 유치원 적응 시간도 금방 끝이 났기 때문에 학교에 남은 민트를 두고 가족들은 다시 집으로 모였다. 아빠가 찍어온 사진 속 민트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지만, 집에 돌아와 들려주는 후기에는 긴장감이라곤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함께 만들어 조금 어설프게 채운 Schultüte(독일에서 Grundschule 입학 시 아이들에게 주는 전통적인 선물로 고깔모양 종이로 만들어 짐. 가족, 친적, 이웃들이 아이의 입학을 축하하며 다양한 선물로 그 속을 채워줌. 하지만 민트의 슐튜테는 독일 생활 초짜인 엄마의 대충 따라 하기 신공으로만 채워짐) 속에 들어있는 달다구리들로 인해 그저 행복에 겨울 뿐.
애나 엄마나 독일어도 제대로 못한 채로 학생과 학부모가 되었는데, 성장 속도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아빠는 영어로 직장에서부터 모든 생활 전반의 모든 일들을 처리했고, 엄마-나-는 대충 눈짓, 몸짓, 짧은 영어 그리고 더 짧은 독일어 단어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는데, 학교에 들어간 민트의 성장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대충 느낌으로만 알았던 단어와 문장들을 보고, 쓰고, 읽으면서 학습에 상승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의 경우에도 언어를 습득하는데, 각기 다른 접근법을 가진다는 것을 이중 언어를 하게 된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관계 중심적이고 귀가 좋은 둘째는 모든 것을 상황의 맥락 속에서 보고, 들으며 언어를 익혔다. 그래서 단어보다 문장 전체로 언어를 익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민트의 경우, 귀보다는 눈이 훨씬 좋아서, 듣고 따라 말하던 것을 직접 보고 써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나 보다. 또 알파벳의 조합으로 소리를 만드는 작업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자 그 흐름 속에서 빨리 글자를 익혔고, 단어가 문장보다 빨리 익혀지는 것 같았다.
이러나저러나 학교 생활이 아이의 입을 트이게 해 준 것은 예상치 못한 효과였고, 역시나 민트의 유치원 선생님들의 판단이 옳았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 갈 즈음 학교에서 상담 요청이 왔다. 민트의 선생님이 영어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를 대신해 남편이 첫 상담에 참석자로 당첨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키가 작고 다부져 보였지만 미소로 따뜻함을 무장한 분이셨다.
선생님은 우선 칭찬으로 시작하셨다. 마빈이 수학에 재능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의 1학년 아이들은 1을 배우기 전, 선긋기부터 시작하는데, 마빈은 한국의 유치원에서 백만, 천만, 억.. 단위까지 세는 방법을 알게 됐고(단위의 이름만 알면 숫자가 커지면서 이름을 붙이는 방식의 원리를 알게 됐던 것 같다), 심심할 때(특히 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끝도 없이 소리를 내 숫자를 세며 놀았다. 더하기, 빼기는 물론, 곱하기 까지도 유치원 친구들에게 배워 온 상태였다. 실로 한국의 유치원 생들은 이미 더하기, 빼기, 심지어 곱하기까지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칭찬을 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 부모와 상담을 요청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착한 선생님은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칭찬으로 시작했지만 금방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준이의 주의 사항은 두 가지였다. 수업시간에 자꾸 돌아다니는 것. 자기가 말하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불쑥불쑥 끼어드는 것!
선생님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1학년 때는 이런 일들은 충분히 있을 수 있고, 학교에서는 잘할 때마다 스티커 붙여 칭찬할 테니, 집에서도 계속 규칙(수업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고, 말을 할 때는 손을 들고 기다리를 것)을 지킬 수 있도록 자주 상기시키고 이야기해 주라 부탁하셨다. 독일어로 그림과 함께 이쁘게 규칙이 쓰여있는 종이를 직접 만드셔서 전해주셨다. 그야말로 올해의 스승상을 주어도 부족하지 않을 그런 선생님이셨던 것 같다. 선생님의 다정함 덕분에 하준이의 학교생활의 시작은 꽤나 평탄했다.
하지만 정신없는 가운데도 "ADHD?"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야말로 스치고 소란한 일상의 뒤편으로 금세 사라졌다.
몇 년 뒤, 잔잔한 일상이 익숙해질 즈음에 학교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나랑 교육의 의무에서 자유롭던 2, 3번은 한국에 가 있었기 때문에 혼자 남은 남편이 또 호출되었다. 남편과 민트는 겨울방학이 되면 뒤쫓아 나오기로 돼 있었다. 독일 이민 후 첫 한국 방문이었다. 설렘을 만끽하기도 전에 남편은 곤란한 면담을 떠안게 되었다.
3학년이 된 민트는 이미 단짝 친구들이 있었고, 축구를 잘하는 A, 멋쟁이 M과 항상 붙어 다녔다.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장난기 많은 소녀 Y도 민트의 친구 무리에 속해 있었다. 사건은 이 무리의 작은 장난에서부터 시작됐다. 아이들의 교실은 2층에 있었는데, 2층 복도에서 내려다보면,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모여 놀기도 하고, 가끔 학교 행사를 하기도 하는 Aula라는 공간이 보인다. 아이들은 난간에 붙어 서서 자꾸 Aula로 무언가 떨어트려 보는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종이조각이나 사탕껍질이 시작이었지만, 점점 떨어지는 물건들은 선을 넘기 시작했고, 결정타로 마빈이 만년필을 아래로 떨어트렸던 것이다. 그것도 뚜껑을 연 채로!
연락은 담임이 아닌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공식적인 문서로 왔고, 진국은 방학식 날 교장 선생님과 면담이 잡혔다. 그날이 바로 진국과 민트가 한국으로 와야 하는 날이었는데, 우리의 민트는 아빠에게 넘어야 할 작은 산을 하나 선사했던 것. 그냥 넘어갈 진국이 아니다.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에 아빠를 걱정하는 민트에게 "너 덕분에 교장선생님 앞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어야 한다."며 뻥을 쳤고, 민트가 믿든지 말든지, 몇 년은 민트를 그렇게 놀렸다.
교장 선생님은 안전에 대해 신신당부하셨지만, 친절하고 신사적인 태도를 잃지는 않으셨고, 그렇게 작은 산은 무사히 넘어왔다고 한다.
친구들과의 소소한 싸움, 아주 가끔씩 학교에서 오는 편지, 그리고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에서 민트는 자꾸만 뾰족하게 드러났지만, 특별하게 태어난 아이가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할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민트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했고,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그랬다.
하지만 선생님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일상의 뒤로 잊힐 뻔했던 단어, ADHD는 그렇게 선생님의 입으로 소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