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인연들
서울에서 일주일을 쉰 뒤 장성으로 내려갔다. 선남 씨 놀이터 같은 뒤뜰은 늘 분주했다. 전기밥솥에서 마늘정과가 만들어지는 동안, 우리는 틈만 나면 나물을 씻고 데치고 말렸다. 전지한 반송의 솔잎에 20리터짜리 올리고당을 항아리에 가득 부어 청을 만들기도 했다.
해먹을 두 개 걸어놓고 선남 씨와 나란히, 보자기에 싸여 공중에 매달리니, 요람에 누운 아기같이 눈이 감겼다. 내 집이 생기면 꼭 장만하고 싶었다.
어느 날은 가출한 까만 염소 한 마리가 별채 보일러실 창문 앞에 꼼짝 않고 지켜 서 있었다. 가라고 해도 껌뻑거릴 뿐이었다. 처음으로 염소 고집을 보았다. 하룻밤을 꼬박 자고도 서 있으니, 선남 씨가 말했다.
"아무래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것 같소. 잡아먹읍시다!"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수소문해서 주인이 데려갔는데, 별채가 자기 우리랑 비슷했던 모양이다.
선남 씨가 살고 있는 본채는 1층은 자신들의 주거 공간, 2층은 펜션 구조로 되어 있었다. 1층 거실은 흔히 볼 수 있는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소파가 놓인 집이 아니라, 10인 이상은 앉을 만한 테이블과 의자가 정중앙에 놓인 사람 중심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집은 정원과 단차를 두고 습기가 없는 곳을 구해야 한다는 팁을 주었다. 조금씩 집을 보는 안목이 생겼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미국에 가면 정원에 물 주기를 부탁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없어도 이웃들이 내려와 대신해 주는 그런 곳이지만, 그냥 내 집처럼 편하게 지내라는 뜻이었다.
미국 떠나기 전에 장성 친구 부부, 선남 씨 부부, 성당 친구 부부, 그리고 우리 8명은 동네 명물 청자연에서 식사를 했다. 좋은 사람들과 이렇게 어울려 밥을 먹으니 이곳이 낙원이었다. 인연의 소중함을, 그 고마움을 조촐하게 나누는 자리였다.
타향에서 피붙이 같은 장성 친구는 수시로 나타나 도와주었다. 상추 김치를 담갔다며 가져왔는데 별미였다. 그릇 한 박스도 챙겨주어 요긴하게 잘 썼다.
"친구야, 나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내어줄게."
윗집의 성당 친구 스텔라는 나와는 동갑내기, 비슷한 결을 느껴 금방 친구가 됐다. 잉꼬부부의 살가운 케미를 지켜보고, 잘 가꾸어진 정원을 보러 수시로 올라갔다.
이 동네에서 제일 예쁜 정원을 가진 집이었다. 들어서면 도랑물이 졸졸 흐르고, 깔끔한 잔디 위의 너럭바위들은 쉼터처럼 앉을 수도 있었다.
정원수와 꽃들이 한창인 5월, 저 멀리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면 이곳이 사람 사는 세상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 풍경을 지키고 싶어 백 평의 땅을 더 사서 흙을 채우고 텃밭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이 집을 구하기 위해 다닌 에피소드도 재밌었고, 참고가 되었다.
스텔라 부부와 주말에 성당에 가면 장성 친구를 만났고 헤어지기 싫어 우리는 또 청자연에서 점심을 같이 먹곤 했다.
선남 씨가 떠나고 스텔라 부부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았다. 무엇보다 장성의 집들을 구경하러 다녔는데 잊히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저수지가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집이었다. 동네의 정자가 너무나 좋아서 스텔라 부부는 자신들이 살고 싶은 곳이라며 데리고 갔다.
안내하는 사람은 이 동네를 처음 일군 장본인이고 중학교 국어교사였다고 했다. 함부로 외부인을 들이지 않고 아는 사람들에게만 땅을 팔아 친환경 중심의 이웃을 만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만들어 판 집이라서 집주인 대신 소개해 주었던 것이다.
정자에 앉으니 사모님이 시원한 미숫가루를 타서 양은 막걸리잔에다 부어주는데 소박함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시작된 끝없는 국어 교사의 입담,
자기 어머니 본명은 마리아인데, 자기는 12월 25일 날 태어났단다.
“그럼 예수님?” 하고 묻자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능청스러웠지만 묘하게 진지했다.
두세 시간이 후딱 흘렀다.
떠나는 우리에게 귀한 마늘이라며 본 적도 없는 굵은 종자를 봉지에 담아주었다. 장성하면 떠오르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아랫집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상추틀로 부러움을 자아냈던 집이다. 이미 선남 씨가 인사를 시켜주어 안면이 있지만, 어쩐지 다가가기 쉽지 않았는데 이것도 기우였다. 남편이 미술 전공 교수라는데, 은퇴 후 카페를 꿈꾸며 지은 집이라고 했다. 남천이 울타리로 빙 둘러 있고 뒤뜰 텃밭틀 곁에는 귀한 오죽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널따란 잔디밭 정원을 지나 노출 콘크리트 집으로 들어가면, 사방이 탁 트인 통유리가 시선을 끌었다. 안방 침대 위에 깔린 이불은 이 집의 상징인 듯 보였다. 하얀 무명천에 은은하면서도 잔잔한 꽃무늬 자수. 안주인의 솜씨가 범상치 않았다. 널찍한 2층 서재, 곳곳마다 생활공간이라기보다는 깔끔하면서도 모던한 미술관을 방문한 느낌이었다.
장성은 사람 여행이었다. 멋진 사람들을 쳐다보고 듣고 말한 하나의 기행문이었다.
숨은 고수들이 이 축령산에 모여,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고 삶을 예술처럼 꾸려갔다. 그 속에 잠깐 방문한 이방인이었지만 내 삶에도 긴 획을 그으며 방향을 제시했다.
류시화의 수필 《지구별 여행자》가 떠올랐다.
이 지구에 여행온 우리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필연이든 우연이든 툴툴대지 말고 즐기면 된다. 삶을 여행자처럼 마주하고 그 모든 일에 '노 프로블럼(No problem)'을 외치면 된다.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면 헤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만남이 준비되듯, 지구별을 구경하며 만나고 또 떠날 여행자로, 장성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살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