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전원주택의 기준을 세우다

길 위에서 완성된 집의 조건

by 나비바늘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었다."

나 스스로 무난한 사람이라 여겼던 판단은 관대한 오만이었다. 집을 보러 다니며 나는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걸 알았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도 "너만 몰랐지?" 비웃을 판이었다.


조건이 늘어날수록 비난인지 충고인지

부동산을 보여 주는 분들은 한 말씀하셨다.


"집을 사지 말고 차라리 집을 지으시죠."

"땅 보여 드릴까요?"


그 말들 속에는 은근한 피로와 체념이 섞여 있었다. 그래도 내가 살 집인데, 시장에서 사과 고르듯 쉽게 눈치 보며 결정할 수는 없었다.


고개를 젓게 만들었던 우리가 원했던 전원주택의 조건을 살짝 공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리스트 형식으로 정리해 본 것이다.


1. 배산임수에 위치할 것.

뒷산과 앞의 강물이 보이는 정경이라면 환상적일 것이다. 강물은 보이지 않더라도, 산은 반드시 옆에 있어야 했는데, 새소리와 맑은 공기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황토나 목조로 지어진 친환경 주택일 것.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시골살이에는 당연한 고려 대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친환경 주택은 벌레에게도 친환경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3. 아궁이가 있는 온돌방이 있을 것.

이건 이미 장성에서 결정한 포기할 수 없는 필수 조건이었다.


4. 남향, 남동향, 남서향일 것.

햇빛을 충분히 받는 집은 여름은 더울 수 있지만, 겨울철에는 밝고 따뜻하여 난방비를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햇빛이 좋았기 때문이다.


5. 시야를 가리지 않는 전망을 볼 수 있는 곳.

단지가 형성된 곳은 의외로 지붕이 시야를 가리고, 빈 땅은 언젠가 집이 들어설 수 있기에 살펴보았다.


6. 대지 200~300평 이내일 것.

너무 작으면 답답하고, 너무 커도 관리하기가 어려워, 화단, 잔디밭, 텃밭의 모양은 갖추고 관리하기에는 적당한 크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7. 건축은 30평 내외로 단층일 것.

둘이 살기에 쾌적하고, 나이 들어 2층을 오르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고, 청소하기에 용이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8. 방 2개 이상, 화장실 2개일 것.

각자의 방이 따로 있어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고, 가족, 친지 방문에도 대비할 수 있으니까 여유로운 공간이 좋았다.


9. 집과 정원이 조금은 단차가 있을 것.

선남 씨 남편의 충고도 있어 습기가 많은 집을 피하고, 벌레나 뱀 등 침입을 덜 받을 것 같아서였다.


10. 주차장에서 정문까지 평지일 것.

물건을 운반하거나, 겨울철 눈길에도 안전하고 점차 나이 들어 계단을 이용하기도 어렵고 낙상도 예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1. 상수도, 하수도, 정화조 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을 것.

사시사철 물 걱정 없고, 생활오폐수나 장마철 대비, 하수도관 처리는 낭만보다 더 앞서야 하는 재해를 막는 필수조건이었다.


12. 지붕과 벽 두께가 두껍고 천고가 높을 것.

지붕과 외벽의 두께가 두꺼우면 외풍을 막아주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천고가 낮으면 답답해 보였기 때문이다.


13. 외진 곳보다 단지가 형성된 곳일 것.

멋모르고 나 홀로 외딴집일 경우, 외롭고, 무섭고, 무슨 일이 벌어져도 도움을 받을 수도 없으니까, 현지인과 외지인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외지인들이 모여 있는 단지가 낫다는 충고를 받아들여서였다.


14. 큰 도로에서 500m 이내일 것.

도로와 접근성이 좋으면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병원 가기도 쉬울 것이고, 운전하기도 편할 것 같았다. 큰 도로와 가까워도 차소리로 시끄러울 수 있으니 소음이 차단될 수 있는 거리에 집이 있으면 좋았다. 그리고 집보다 도로가 높거나 좁더라도 뒤쪽에 있거나 삼거리 중앙에 있을 경우 불안정해 보였다.


15. 대지, 전답, 도로 등을 정확히 확인할 것.

이해관계에 얽혀있을 경우 분쟁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고려한 내용이었다.


16. 서울에서 이용하기 쉬운 대중교통이 있을 것.

나이 들고 운전하기 힘들 때나 급할 때, 시외버스나 기차나 KTX 등을 탈 수 있으면 좋기 때문이었다.


17. 구입 금액은 2억에서 3억 미만일 것.

투기용도 아니고, 한 번 구입하면 팔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이 정도는 투자해야 위의 조건을 비슷하게 갖춘 집을 만날 수 있었기에 결정했다. 2019년의 시세이니까 감안해서 생각하면 된다.


"어떤 집을 원하시느냐?"

물으면 이런 조건들을 몇 가지 응대만 해도 비슷한 집을 보여 주었고, 보면서 조건들을 수정했다.


이 모든 조건을 완벽히 갖춘 집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준을 세우고 적어 내려간 일은 분명히 현명했다. 무엇을 포기할 수 있고, 무엇은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었으므로.


그리고 우리는 강원도 평창, 횡성 지역을 적극적으로 보게 되었다.


집을 고르는 일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일이었다.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묻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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