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내 집을 만나다

우리를 기다렸던 시골집

by 나비바늘

내가 살 시골집의 기준을 세웠다고 곧바로 집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은 어느새 6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류시화의 수필집에서 늘 얘기하는 인도인들의 뻔한 상술에도 감탄하는 말이 있다.

"너를 만나려고 50년을 기다렸다."

웃음이 나지만 진리에 가깝다.


평창의 집들을 보러 다니다가 길을 잘못 들어 헤매던 날, 한 60대 남자를 만났다. 길을 묻자 그는 잠시 쉬었다 가라며 차를 내주고 집까지 구경시켜 주었다. 작은 텃밭에는 푸른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고, 그 풍경을 보는 순간, 하루빨리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횡성의 부동산 사장님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것이 횡성에 집을 사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신을 만나려고 60년을 기다렸다.'

슬며시 웃음이 났다.


곧바로 전화를 걸어 다음날 아침에 만나기로 하고, 예약한 횡성군 둔내에 있는 콘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횡성집을 구할 때까지 자주 이용한 숙소였다.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적 있는 평창도 좋았으나 서울과는 거리가 멀었다. 솔직히 우리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횡성은 애초에 떠올려본 적 없었지만 이렇게 이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서울과의 거리, 원주와의 접근성, 그리고 생각보다 합리적인 집값까지, 조용히 마음을 끌어당기는 조건들이 많았다. 특히 KTX역이 두 개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횡성을 중심으로 집을 보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말 IC 부근에서 만난 60대 초반의 A부동산 사장님과는 각별한 사이가 됐다. 그분은 한 마디로 횡성 토박이에 마당발이었다. 가는 곳마다 이웃들과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며 횡성의 매물은 거의 다 꿰고 있었다.


우리가 제시한 조건과 상관없이 횡성을 투어 하는 기분으로 자신의 차에 태워 보여 주었다. 그 동네에 간 김에 구경하라며 이집저집을 마구 보여주어 나날이 집을 보는 안목이 높아졌다. 조경수도 중요하다는 걸 배우게 됐다.


점심도 같이 사 먹고 얘기도 나누어서 촌수가 좀 먼 친척을 만난 기분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집에도 데리고 가 부인도 소개해주고 차를 마시며 인사도 나눌 정도가 되었다.


많은 집을 보여주었지만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땅이 넓은 골짜기 집은 허름했고, 남향에 자리 잡은 집은 좁고 답답했다. 두서너 채씩 지어 파는 집들은 비어 있어 언제든 입주 가능했지만 아궁이가 없었다.


그렇게 이틀간 다녀도 마땅한 집이 없었다. 정이 든 사장님과의 인연은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횡성이라는 곳에서 찾아야겠다는 확신을 갖게 해 준 분이었다.


떠나온 지 일주일이 지나서 서울집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유튜브에 키워드를 치고 몇 집을 체크하고 B부동산 사장님과 약속을 잡았다.


그 사장님도 모처럼 신이 난 모양 이집저집을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었다. 연수원처럼 생긴 집, 황토와 통나무로 지은 기와집을 보여주었지만 고속도로 옆이어서 시끄러웠고 앞에는 사찰이 있었다.


깨끗하게 조성되고 있는 전원주택 단지에 갔을 때 거의 마음에 끌리는 집이 있었지만 집값이 비싸고 여유 공간이 없었다. 주차장도 좁고 집까지 올라가는 계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침 집을 짓는 여사상님을 만났는데 철학이 대단했다. 귀촌해서 살아보니 '이런 집이 좋겠더라'에서 시작된 집 짓기는 월급을 주는 직원들을 거느리고 집을 지을 정도가 되었다고 했다. 여러 곳에 주택 단지를 조성했다고 했다.


여자들이 좋아할 집에 대해 연구하고 집을 지었다는 것이 증명되듯 내부가 마음에 들었다. 아궁이방도 따로 지어, 그 방은 단차를 주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쪼그리고 앉아 불을 때야 하는 아궁이를 낮추는 대신 방 높이를 높여서 독특했다.


서울 아파트 같은 구조와 널따란 부엌, 욕실, 새시 등 이름 있는 자재들을 써서 깔끔했고, 부엌과 실외가 연결된 야외 데크도 마음에 들었다. 멀리 앞산도 보여 경치도 좋았고 뒷산도 있었다. 그러나 옆집과의 거리는 너무 가까웠다.


양평과는 가까우나 고속도로와는 좀 멀다는 것이 흠으로 다가왔고 마트도 좀 멀어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누릴 산이 곁에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난 C부동산 중개사님이 결정적이었다. 우리의 조건을 듣더니 냅다 차에 타라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 가 본 적 있는 동네에 데리고 가서 보여주었는데, 지금은 잘 아는 이웃 동네이다. 그 집 역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동네를 가 보았냐고 물었다. 거기 똑같은 집을 두 번이나 보았다고 했더니, 그 집이 아니고 다른 집이라며 우리를 데리고 갔다.


두 번이나 본 집은 A와 B부동산 사장님이 틀림없이 마음에 들 거라며 보여 주었던 집이다. 한 번은 소개해줘서 갔고 두 번 째는 그 집인 줄 모르고 갔던 것이다. 뒷산이 있고 남향이었다. 아궁이도 있었다. 그러나 잔디밭은 넓은데 세모꼴이고 주차장에서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했다. 거실은 넓으나 방은 두 개였지만 좁았고, 화장실도 두 개였다. 뒤뜰은 여유 공간없이 바로 산이어서 안정감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제시한 조건에 상당히 근접한 집이긴 했다.


그때 보면서 바로 옆집 저 집 정도는 괜찮겠다는 느낌이 있던 집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10 가구 정도 되는 집이 단지로 조성되어 있고 집들이 조금씩 방향을 틀어 사생활 노출도 신경을 쓴 것 같았다. 무엇보다 멀리 앞산이 겹겹이 보여 탁 트인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제일 중앙에 놓여 커 보였다.


60대 부부가 주말마다 왔다가는 집이어서 내부도 깨끗했고 무엇보다 아궁이방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텃밭은 작았지만 심어놓은 야채들이 싱싱해서 금방이라도 따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정원 크기도 적당했고, 주차장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도 평지이고 넓었다. 낮은 대문이 한쪽으로 밀쳐져 있고 장미덩굴이 타고 오르도록 하얀색 나무 아치를 통과해서 집으로 들어가게 해 놓은 것도 이 집의 상징처럼 예뻤다. 반송과 공작단풍도 고급져 보였다.


사과나무 곁에는 철쭉들이 있었다. 잔디밭을 경계로 울타리진 나무들이 아늑해 보였다. 대추나무 자두나무 앵두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보리수 등 유실수와 상징인 듯 큰 뽕나무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당시 몸에 좋다고 유행하던 아로니아나무도 까만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경계석 사이사이에 철쭉과 회양목이 과하다 싶을 만큼 심어져 있었다. 조경수에 신경을 쓴 모습이 역력했다.


뒷마당도 넓은데 돌을 깔아 깔끔했고 야외 수도가 있어 쓸모가 있어 보였다. 뒷집의 밭이 있어 가운데 집이라는 단점을 보완하는 듯했다. 앞 텃밭에도 야외 수도가 있어 편리해 보였다.


그리고 아궁이 방 바로 옆에 산이 인접해 있어서 언제든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좋았다.


널찍한 방도 세 개나 되고 계단을 올라가는 다락방도 서서 다닐 만큼 높고 넓었다. 거실은 미송으로 벽을 마감재로 써서 냄새가 좋았고, 층고도 높았다.


바깥주인이 만들었다는 목재 소파가 인상적이고 주말에 살다가는 집이라서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살림도 집을 돋보이게 했다.


아궁이방의 절반은 황토로 마감을 했는데 위쪽은 나무 마감재로 손을 봐야 할 것 같았다.


거실바닥은 강화마루로 되어있는데 방 2개는 장판을 걷어내고 강마루로 깔고 벽지도 갈고 싶었다. 지은 지 3년 된 집이라니 살면서 불편함을 해소한 검증된 집 같았다.


부엌이 좀 더 밝고 야외로 통했음 했으나 우리가 원했던 모습은 아니었고 색깔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거실 앞 데크가 아주 넓어서 놓여있는 야외 테이블을 이용해도 좋을 것 같았다. 화장실도 하나였고 상수도가 아닌 지하수를 이용해야 하는 문제점이 속속 보였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남향이 아닌 동향이었다. 단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집 가격에 마음이 혹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얼마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데 괜찮다는 생각에 남편과 둘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손가락으로 약속이나 한 듯 오케이 사인을 주고받았다.


저기 또 다른 동네를 보여주겠다고 했으나 안 보겠다고 이 집으로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좀 마음이 다급해졌다. 솔직히 놓치고 싶지 않았다.


딱 두 집을 보여주고 성공한 부동산이었다. 그동안 이 집을 만나려고 그 많은 집들을 보았나 싶었다.


언제든 입주 가능이라고 했고. 우리는 장성집에 살림을 가져오기 위해 일주일 기한을 잡았다. 6월 하순이었다.


계약금을 주고 다시 집을 찾았다. 아까는 넓어 보였던 정원이 살짝 작아 보여 실망스러웠지만 250평 넘는 집인데 둘러보니 정원수도 많고 화단의 꽃들도 제 맘대로 피어 자라고 있어 내 손길을 기다리는 듯했다.


이제 텃밭의 고추, 가지, 오이, 파, 상추 등이 일주일 뒤에는 우리 것이 된다는 게 설렜다. 혹시 저 작물 때문에 마음이 혹한 게 아닐까?


무엇보다 큰 도로와 인접해 있지만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았고, 100m만 올라오면 집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해발 520 고지라 여름에는 시원한데 겨울은 어떨까 살짝 걱정되었다.


조건에서 많이 포기했지만 아궁이가 가장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이 위에서 얘기한 여사장의 작품이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게 우리 집을 찾았다.


그동안 보았던 수많은 집들은 이 집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집을 고른 것이 아니라, 한 집에 이끌려 도착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횡성의 집은, 산내음과 아침 햇살, 그리고 새소리가 함께하는 곳이다. 어쩌면 그 집은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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