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으로 짐을 옮기다

변덕스러운 내가 선택한 두려움과 결심

by 나비바늘

나는 쉽게 빠지고 쉽게 그만둔다.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도전하기를 좋아하고 열정적인 편이다. 한 번 해보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떡하든 시도하거나 가져본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데가 있다. 끝을 보지 못한다.

뭐든 10년 이상, 일만 시간 이상을 투자하면 잘한다는데 10년 이상을 해온 것이 아주 드물다. 그나마 34년 직장을 그만두지 않고 다닌 것, 지금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40년을 산 것, 오래된 친구들과 즐겁게 만나는 정도이다.


그래서 취미생활도 꾸준하지 못하고 자주 바꾼다. 2~3년 하다가 접는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져 금방 싫증을 내고 그만둔다.


새로운 일을 도전하면 남편은 한 마디씩 비꼰다.

"이번에는 23번째 취미생활이네." 슬쩍 기분 상하지만 맞는 말이다.


운동을 예를 들면 테니스와 배드민턴도 배우다 말고, 수영도 접영에서 수영장을 떠났다. 볼링도 미친 듯 혼자서 하러 다니다가 슬며시 그만뒀다.


에어로빅도 배우고, 한 때는 스포츠댄스에 빠져 몸을 흔들었다. 룸바, 차차차, 자이브, 왈츠, 탱고, 파소도브레 등 다 건드려보고 지금은 손 놨다. 몇 년 간 등산에도 빠져 지리산을 종주해 보는데 합류하기도 했다. 취미 생활이 바뀔 때마다 운동복도 달라지는 통에, 서랍은 나의 변덕으로 자주 탈바꿈해야 했다.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전원주택, 시골집에 대한 나의 변덕이 생길까 두려워서였다.

그동안의 취미생활과는 차원이 다른 투자이다.

오랫동안 싫증 내지 않고 잘 활용해야 할 텐데. 작은 것도 아니고 몇 년 살다가 그만 살고 싶다고 변덕을 부리면 어쩌나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그 돈으로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갭투자 했다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시세에 돈을 벌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도 남편은 당신 건강을 찾았으니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도 나를 조금 안심시켰다.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한 번 정하면 변덕이 없기에.


그렇게 두 달간의 집 찾기 여정이 끝났다.

계약을 하기 위해 만난 횡성집 전 주인은 점잖고 깔끔한 노부부였다. 장성에서 짐을 빼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 7월 초에 이사 날짜를 정하고, 자신들이 쓰던 물품을 많이 남겨 주겠다고 했다.


잔디 깎는 기계를 비롯한 농기구와 구입한 지 3년 정도 되는 장롱, 냉장고, 세탁기, TV 등 자신들도 가지고 갈 수는 없지만 쓸모 있는 것만 주는 조건으로 약간의 돈을 지불했다. 그분들이 남기고 간 물품들은 상당히 유용한 것들이었다.


이제는 횡성집으로 장성의 짐을 옮기고 새 가구와 가전을 장만해야 했다. 서울로 돌아와 당장에 필요한 침대와 소파와 식탁을 샀다.


추운 산속을 대비하여 돌침대를 둘러보고 배달 날짜를 잡았다. 식탁과 소파는 조금은 비쌌지만 컨추리풍의 따뜻한 느낌의 원목으로 골랐다.


모처럼 새 집을 꾸미고 살고 싶은 집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심플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라이프를 꿈꾸며 필요한 것만 최소로 장만하고 싶었다. 그리고 전자레인지와 인덕션과 하이라이트가 겸비된 전기레인지를 구입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마다 찾아오던 그 기운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밀어 올렸다.

남편도 달라져 있었다.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는 듯, 나와 함께 물건을 고르며 즐거워했다. 이렇게 마음이 맞아본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집에서 쓰지 않는 그릇과 냄비 등을 챙기고 옷가지 등을 챙기는데 시간이 후딱 지났다.


그리고 7월 초순 잔금 치르는 전날, 장성으로 향했다. 우리를 기다리는 짐을 챙기기 위해서이고, 이웃과도 작별을 해야 했다. 펜션 집주인 선남 씨는 미국에 있어서 카톡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장성에서 하룻밤을 자며 짐을 싸고 정들었던 풍경을 둘러보았다. 변함없이 산속의 고요함과 새소리가 이제는 나도 내일부터 내 집에서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다. 스텔라 부부와 장성친구와는 훗날의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횡성 부동산으로 내달렸다. 작은 승용차짐칸과 뒷좌석은 짐으로 그득했다. 두 달에 걸친 집 찾기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부동산에 도착해 잔금을 치르고, 전 주인과 인수인계를 마친 뒤 집으로 들어섰다. 짐이 빠진 32평의 공간은 한결 넓어 보였다.


이제 이곳이 우리의 집이라는 생각에 자연스레 애착이 생겼다. 다음 날, 침대를 들이기 전 방 두 개는 장판을 걷어내고 강마루를 깔았다. 벽지는 그대로 두었는데, 깔끔했다.


이어서 침대와 식탁, 소파가 차례로 들어오고 자리를 잡자 집 안은 금세 아늑한 온기를 띠었다. 우리의 색깔이 입혀졌다. 모든 일이 막힘없이 흘러갔다.


이사 떡을 준비하여 이웃들에게 돌렸다. 옆집 초대로 들른 자리에는 서너 집이 모여 다과를 나누고 있었다.

“전 주인과 분위기가 비슷하시네요.”

누군가의 말에 우리는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집에는 늘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 이어져 살아간다는 뜻 같았다. 기분 좋은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우리의 시골살이가 시작되었다. 7월 초의 횡성은 낮은 더운데 밤에는 썰렁했다. 맑은 산 속의 공기와 고요함, 그리고 새 소리와 한창 피고 지는 꽃들 속에 우리 얼굴도 꽃처럼 환했다.


아침이면 마트에 가듯 텃밭으로 나가 싱싱한 상추와 고추, 오이를 따왔다. 갓 딴 채소로 차린 밥상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몸도 마음도 한결 건강해지는 기분이었다.

조금씩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번 선택만큼은 쉽게 그만두지 않기를, 나는 조용히 바라고 있었다. 취미처럼 쉽게 접을 수 있는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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