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책을 선택한 이유
시간만 있다면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책만 보고픈 시절이 있었다.
그토록 간절했던 시간에도 늘 책을 읽었었다.
퇴직을 하니 왕창 시간이 내게 부려졌다.
책을 읽을 줄 알았다.
하루 종일 책만 읽을 줄 알았다.
그러나 책보다 쉬운 볼거리가 넘쳐났다.
미친 듯 지나간 드라마나 영화를
폐인처럼 정주행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머리는 갈수록 텅 비워졌다.
5년 간 그렇게 비우는 작업을 했다.
그 사이
책장에 꽂힌 책을 20박스 넘게 처분했다.
쓸데없는 책 욕심을 부린 결과이다.
중고서점에 일부 팔았지만
열 권 정도의 값에 지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내 취향이 아닌 책과 딸이 증정받은 각종 새 책은 중고서적을 매입하는 분이 활짝 반기며 종잇값으로 몇 푼 주었다.
연식이 오래된 책 10박스 정도는 그냥 쓰레기로 버렸다.
그래도 책장 5개가 아직 남아있다.
다시는 책을 사지 않으리라.
사더라도 중고서점에 넘기리라 하면서
밑줄도 긋지 않고, 읽고는 팔려고 했다.
몇 번 그랬다.
기억에 남는 게 없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서재를 정기구독했다.
그러나 내가 읽고 싶은 전자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2년 간 연회비만 날렸다.
다시 책을 사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했다.
독서모임을 결성했다.
책에 밑줄을 그었다.
할 말이 고이기 시작했다.
자꾸 책들이 꼬리를 물고 읽게 했다.
낯설고 접근하기 쉽지 않은 책도 읽게 되었다.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책을 읽고 쓸 말이 많아졌다.
말 걸어왔던 책들을 메모하고 소개하고 싶었다.
블로그에 책을 읽은 뒤 글을 남겼다.
작년 7월부터 꾸준히 매주 1회씩 글을 올렸다.
아직은 공감 수가 초라하지만 연연하지 않는다.
이제는 서점에 간다.
그곳에는 책 읽는 사람이
조용히 늘어나고 있었다.
왜 그럴까?
볼거리 즐길거리 넘쳐나는 세상에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 것은
책이 제자리를 잘 지켜냈기 때문이다.
반짝거리는 눈,
희미한 입가의 미소
책 읽는 사람들의 표정이다.
퇴직 이후 갑자기 많아진 시간 앞에서
책을 멀리했던 한 사람이
비우고, 버리고,
혼자 읽고,
함께 읽으며
생각과 말과 글을 회복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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