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읽는, 읽을 책과의 거리
한때 '거실의 독서실화'가 유행했던 적 있다.
벽면 가득 책을 전시하고, 거실 가운데 긴 탁자를 놓아 책 읽는 가족의 모습.
나 역시 지적 허영심과 팔랑귀로 멋져 보여 따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집 거실은 한결같이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소파가 놓이고 가족도 일제히 책 대신 한 방향으로 시선을 모으곤 했다.
그런데 나만 꿈꾸는 독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책을 모았던 것이다.
거실 한 켠, 두 아이 방 귀퉁이, 안방문 뒤쪽 벽, 심지어 베란다까지 책장이 있었으니 산만하고 너저분했다. 책에 대한 집착이 도를 지나치다 싶었다.
이사라도 갔으면 정리가 됐겠지만 고인 물처럼 30년 동안 같은 아파트에서 머물고 있어 고물들을 끼고 살았다. 점점 넘쳐나는 물건들 앞에 단호한 결심이 필요했다.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평수를 늘려 이사하고픈 생각에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몸이 아프고 이러다 죽으면
이 많은 짐들을 어떻게 하지 싶었다.
보이고 싶지 않은 흔적들을 조금씩 지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단행했다.
우선 옷가지를 정리했다.
기가 막혔다.
장롱에 쑤셔 박은 쓰레기들,
가차 없이 정리했다.
중고의류 매입하는 분이 다섯 집을 수거한 양이라며 희색을 드러냈다.
옷 한 벌 값도 아닌 돈을 받았지만,
옷장은 훌빈했고
마음은 홀가분했다.
다음은 책 차례였다.
평생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는 남편이 제일 좋아했다. 아이들도 취업을 했고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유난을 떨지는 않았다.
그래도 글 쓰는 직업을 가진 딸은 참 용하다 싶은데 읽은 책은 학창 시절로 끝낸 듯 싶었다.
아들은 책의 용도가 실용적 가치를 주는 물건일 따름이었다.
일단 책장마다 겹쳐있는 책들, 문학전집, 전공 서적, 논문, 소설, 수필, 철학 서적, 한글, 영어사전, 옥편, 대학노트, 월간문학, 잡지, 피아노곡집, 미술 관련 화보, 리폼 뜨개질, 인테리어 관련 책까지 맥락도 취향도 꼬집을 수 없는 책들을 거실로 쏟아놓고 책장 5개만 남기기로 정했다.
버릴 책, 남길 책, 유보.
세 가지로 분류했다.
오래 되어 가독성 떨어지는 전집은 버리는 1순위였다. 사전이나 누렇게 변색된 단행본도 버리는 축에 들어갔다.
각자의 전공서적 몇 권씩, 내가 좋아하는 소설, 시집들 위주로 챙겼다.
딸애가 증정받은 새 책들 중 관심사 밖의 책은 따로 분류했다. 새 책이지만 증정 표시가 있어 중고로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긴 책들은 급한 대로 책꽂이에 꽂고 책장을 세 개나 버렸다. 그리고 남길 책들을 책장에 정리했다.
버릴 책 중에서 추려, 유명한 중고서적 매입하는 곳에 카트 가득 싣고 가서 팔았다. 새 책10권 정도는 살 돈을 받았다. 누군가는 볼 수 있으니 버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식솔을 팔아넘기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은 중고 매입하는 분을 불렀더니 새 책만 골라가고 폐휴지로 취급하는 연식이 오래된 책은 놓고 가면서 폐휴지 값으로 몇 푼 쥐어 주었다.
그리고 코로나 때라 나머지는 10박스 정도는 폐휴지로 분리수거하는 날 버렸다.
다시는 책 사지 말자.
그렇게 결심을 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그 결심은 흐려졌다.
읽고 싶은 책은 따로 있지 않은가?
그런 구실로 사들인 한 권 두 권
지금 책상 위에 또 수북이 쌓였다.
책이 많다고 그 책
다 읽는 것은 아니다.
읽고 싶은 책, 좋아하는 책을 사면
자연히 묵은 책, 손 가지 않은 책은
버리는 게 마땅하다.
"책은 소유가 아니라
책 내용을 소유해야 한다."
또 한번 잣대를 들이대고 정리를 할 때가 온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