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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Jul 22. 2022

프롤로그: 인공_지능에 대하여

2022. 기술에 대하여(프롤로그). 00

  모든 일에 인공지능이 탑재되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스피커, 냉장고나 에어컨도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한다고 광고합니다. 말 그대로 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GPT-3라고 하는 최첨단의 인공지능도 등장했는데, 인간처럼 칼럼을 쓰기도 하고, 또 그들이 써낸 글이 인간의 것과 구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이쯤 되니까 인공지능이 등장한 초창기에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우려(싱귤래러티(Singularity), 특이점)가 마냥 허무맹랑하기만 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우리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매번 ‘도구’를 만들어 왔습니다. 삽, 곡괭이로 인간 신체의 약점을 극복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굴착기나 지게차 같은 거대한 전동 도구를 통해 기존의 도구가 가진 한계를 또 한 번 극복해 내고야 맙니다. 이처럼 ‘도구’는 태생적으로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게 도와준다는 표면적인 의미 외에도 인간 창의성의 결정체임과 동시에 끊임없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했던 인간의 도전정신에 대한 상징이라는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도 인간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지능이나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써 아주 오래전부터 고안되었습니다. 데이터의 증가, 디지털 기술 발전과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라는 개념이 맞물리면서 ‘인공지능’은 급격하게 현실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계산기나 컴퓨터 따위보다 똑똑하게, 보다 인간답게, 심지어 인간보다 더욱 뛰어날 수 있도록 맞닿은 한계를 몇 번이고 뛰어넘고 있는 중입니다. 도구의 발전과 인간의 도전정신이라는 두 가지 요인의 관계를 ‘인공지능’이라는 도구에 대입해보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넘는 시점, 즉, 특이점(Singularity) 또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도달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인공지능이 기술과 전혀 관련 없는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 이후로 기억합니다. ‘1승 4패, 알파고의 승리’, 가벼운 과학 이벤트가 가져온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기계가 인간을 바둑에서 이길 수 있다니’, ‘지능’, ‘사고’라는 지구 상 어떤 생명체보다 가장 고차원적이고 품격 있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는 절대적인 진리가 깨져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안심하라’고 했죠. 인공지능이 바둑을 이겼을지언정, 바둑을 잘한다고 해서 인간의 고유한 ‘창의성’의 영역은 절대 모방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70년대부터도 이미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인공지능은 몇 차례 실험에 성공한 적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알파고 대국 전부터 구글에선 인공지능 화가 ‘딥드림’을 공개했고, 그 이후로도 더욱 그럴듯한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만들거나 하는 인공지능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식’이나 ‘창의력’은 더 이상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특권이 아니게 되자, 인간들은 복잡한 ‘위기’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간단하게 ‘위기’라고 했지만, 보다 미묘합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동시에 공포, 우려, 두려움이 뒤섞이며 썩 명쾌하지 않은 기대와 우려가 되어버립니다. ‘약육강식’의 잔인한 법칙을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무의식적으로 투영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인간이 도구를 만들 땐, 혹은 그런 도구를 인간이 더 이상 관리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갈 때 즈음엔, ‘윤리’나 ‘규정’을 만들어서 발전에 제동을 걸어 놓습니다. 인공지능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구체적이고 다양한 윤리 규정들이 논의되었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쏠렸던 부분은 ‘설명 가능(韓 관계부처 합동(‘21.5),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실현 전략(안)”을 비롯한 영국, OECD 등)’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어떠한 결과를 도출하면, 결과의 해석에만 그치지 않고,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인간’에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조항이었습니다. 단순한 내용이었지만, 이로써 인간은 기계에게 질문하고 기계는 이에 대답하는 관계, 즉, 기계가 인간을 위해 인간의 사고와 언어를 활용하여 인간을 설득해야만 하는 종속적인 갑을관계가 설정되었습니다. 인간을 위해 대신 일을 하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기계, 그러니까 스스로 생각하는 기계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충실한 종의 역할에만 집중하길 바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미래의 인공지능은 ‘설명 가능’이라는 안전장치로 인간을 위한 충실한 종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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