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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May 26. 2022

(10YEARS) 제2화. 2023년.

코로나, 저출산, 갈등, 환경, 인체 칩(220510)

  2022, 놀라움이 가득했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고,  코로나에 걸렸다. 게다가 집도 샀다. 맞다. 두려움에 영혼을 끌어모았고, 때마침 대출 한도도 늘어났으니  을 마련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변두리에 오래된 아파트지만 집을 가졌다는 안도감,  이상 이사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정감. 게다가 나도  자산(물론 대부분 은행이 소유하고 있지만) 모았다는 안심까지 들었다. 충격과 혼란, 고통과 환희가 뒤엉켰던 날이 지나고, 새롭게 시작된 2023 시작부터 남달랐다.


  『이젠 병원에서도 의사에게 자신의 통증에 대해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사람의 머리에 칩을 이식하여 컴퓨터와 뇌를 연결하는 기술, 이른바 BCI(Brain-Computer Interface)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용화되었습니다.』     


  자료화면엔 노년의 남성이 의사와 눈을 마주치자, 의사의 컴퓨터엔 환자의 병명과 통증 정도, 부위, 처방전이 자동으로 작성됐다. 어디가 아픈지 묻거나, 청진기로 소리를 듣지 않아도 정확한 진찰이 가능했다. 게다가 대면하지 않고도 온라인에 접속해 있다면, 지구 상 어디에 있더라도 진단이 가능했다. 인권을 문제 삼아 칩 이식을 반대했던 단체들도 훌륭한 결과물 앞에서 입장을 수정했다. 기계적인 칩을 머리에 이식했을 뿐인데 세상은 영생의 비밀이라도 알게 된듯냥 호들갑을 떨었다.     


  상용화되었다 해도, 꽤 큰돈이 필요한 칩 이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전 세계적으로 칩 품귀현상은 지속됐고, 또 칩을 이식받은 의사를 찾는 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부자들은 칩 이식을 서둘렀다. 온라인에 칩 이식 수술 장면이 공개됐는데, 수술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말이 거창해 수술이지, 충치 치료나 점을 빼는 시술보다 간단했다. 로봇 팔이 머리를 붙잡고, 간단한 마취 이후에 뒷덜미 쪽에 작은 칩을 이식한다. 이게 끝이다. 피 한 방울 없이 끝난 수술의 상처는 이틀이면 아물고, 수술 당일부터 샤워에 수영까지 가능하다. 게다가 머릿속에 칩은 결제를 진행하거나, 생각만으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정보를 검색할 수도 있었고, 나중엔 가전제품이나 자동차까지도 생각만으로 조작할 수 있다고 했다. 머리에 칩을 이식한다면 모두가 초능력자가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머리에 칩을 이식하는 덴 아직까지 꽤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 회사 대표님도 칩을 이식했다. 꽤나 알짜배기 부자였는데, 재산의 절반 가까이가 이식 수술과 업데이트에 들었다고 했다. 그날 이후로 대표는 출근하지 않았다.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24시간 내내 암호화폐를 거래하면서, 회사 직원들의 업무 내용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머리에 칩을 이식한다는 건, 초능력이 생긴 다기보단 신이 되는 일에 더 가까운 건 아닐까 싶었다.     


  누구는 머리에까지 칩을 이식하는데, 난 그놈의 칩이 없어서 작년에 계약한 자동차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나야 불필요한 사치를 부린다 쳐도, 반도체 수급 문제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았다. 몇몇 공장은 문을 닫았고, 우리 경제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했던 ICT 산업은 휘청였다. 게다가 칩 때문인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때문인지 코로나 이후의 불황은 쉽사리 극복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도 무너졌고, 패권 경쟁은 더 극심해졌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중국은 러시아를 앞세워 1년도 넘게 전쟁 중이다. 그들의 전쟁은 초기부터 대리전의 양상을 보였지만, 어떤 누구도 이를 공식화하지 않았다. 칩과 함께 곡물, 광물, 광물자원까지도 끝없이 치솟았다. 1차, 2차, 3차 구분 없이 모든 산업이 불황이었고, 작년까지만 뭔가 새로운 희망 같았던 전기로 굴러가는 자동차,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공장까지 코발트나 폴리실리콘 같은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모조리 중단되어 버렸다. 여전히 전 세계가 디지털 전환과 탄소중립을 주장하지만, 목표는 계속해서 더 먼 미래로 수정되고 있다.     

  코로나는 이제 감기보다 흔한 질병이 됐고, 누군가는 여전히. 인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질병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다한들 달라질 건 하나도 없었다. 우린 3년을 고통받았고, 세상은 변했다. 변화된 세상은 원망의 대상이라기 보단 서둘러 적응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은 기회보단 위기가 더 컸다. 집값과 주식은 연일 폭락 중이고, 금리를 사상 최고치다. ‘그래도 난 집이 있으니까’하고 안심하다가 울컥 불안해진다. 나 이대로 괜찮을까.     


  친구 하나가 세상을 떠났다. 암이라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암은 이제 죽는 병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뭔가 잘못됐다. 코로나도 걸리지 않았던 놈이 이젠 괜찮다던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슬펐는데, 덜컥 겂이 났다. 떠난 친구에게도, 그들의 가족에게도, 특히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다는 친구의 막내아들에게도 미안했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보험을 더 많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앞섰다. 유전자 검사 이후에 가입하는 보험은 보험금도 저렴했고, 보장까지 좋았지만 유전적으로 암 발병 위험이 높으면 가입을 거부당하고, 거부당한 정보 때문에 다른 보험까지 가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그놈의 마이 데이터가 나의 유전자적 치부까지 남김없이 까발리는 시대라고 생각하니까. 또 친구에게 미안하게도 지금 당장 암에 걸리지 않았음에 감사했다. 미안함과 감사함과 비겁한 안도가 뒤엉키는 요즘이다.     


  미국의 물가는 작년 대비 10% 이상이 뛰었다. 물론 작년에도 그 전년도보다 9% 이상이 올랐다. 우리나라는 괜찮냐고? 괜찮을 리가. 나라들은 하나같이 자립 자생을 외쳐댔는데, 희한하게 경제는 무작위로 뒤엉킨 실타래같이 하나가 무너지면 모두가 피해를 본다. 그럼에도 학자들은, 또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멋대로 조작하는 언론에서는 공급망이 무너졌으니, 우리도 각자도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반도체 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말 따윈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와 협력이나 지금 당장 새로운 개념의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모두가 알기 때문일까. 오히려 최근에는 토목을, 건축을, 땅을 파고 메우는 우리의 경제 원동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런 궤변은 ‘르네상스’ 같은 그럴듯한 말장난으로 순화되고, 수 조원의 예산을 발판 삼아 기적적으로 실행됐다. 다른 나라들의 정책도 다른 듯하면서 모두가 비슷하게 추진되는 모습을 보였다. 정리하면 지금, 이 세상의 경제는 궤변으로 시작되어 세금으로 유지되는 아슬아슬한 경제다.     


  경제가, 아니 우리가 믿어왔던 자본주의의 위기는 정치나 정책이나 산업이나 하는 거창한 차원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올해 중반기가 넘어가면서 부동산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로선 큰 위기다. 아직 수 억 원의 대출이 남았는데, 집 값은 대출만큼 떨어졌다. 그러니까 이젠 집을 팔아도 대출조차 갚을 수 없게 됐으니까. 최대한 꾸역꾸역, 회사에서 버텨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렵게 입사하고 쉽게 퇴사하는 MZ세대’ 같은 기사가 쏟아졌는데, 올해는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 더 이상 자리를 내주지 않는 MZ세대’라고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MZ 세대는 나도 포함됐고, 나보다 10년도 어린 신입직원도 포함됐는데. 당최 그놈의 MZ세대를 정의하고 판단은 어떤 놈들이 하는지 궁금해졌다.     


  무조건 버텨야 하는 시대라고 언론은 연신 떠들어 댔고, 바로 다음 뉴스는 항상 생필품 가격의 인상 소식이 이어졌다. 소주나 담배의 가격은 매년 올랐다. 게다가 올해는 국민 건강을 위한다면서 각각 천 원씩 인상하기 위한 계획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했다. 이젠 슬퍼서, 외로워서 술을 마신다는 말이 사치가 됐고, 알코올 중독은 당뇨처럼 부자병 취급을 당했다. 담배도 마찬가지다. 연초가 건강에 안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전 세계 담배회사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 권련형 담배는 액상이나 연초보다 덜 해롭다는 논문을 대거 쏟아냈다. 몇 해 전만 해도 분명, 권련형, 액상형, 연초 담배 모두 똑같이 건강에 해롭다고 했지만, 연구 결고에 따르면 희한하게 액상과 연초는 계속 건강에 나빴고, 권련형은 폐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 데에 권련형 담배가 사회적 관계나 자존감 회복, 우울증 극복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결과까지 발표했다. 한 갑에 거의 만원인 담배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는 공익광고는 계속 송출된다. 예전부터 대충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담배는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는 가장 유용한 소비재다.     


  자연스럽게 출산율도 줄었다. ‘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81명이었는데, 올해는 사상 최초로 0.7명대를 기록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아니 코로나가 종식되었다고 선언하면 결혼을 미뤘던 사람들도 서둘러 식을 올리고, 곧장 임신이나 출산으로 이어질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측은 보기 좋게 틀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인구절벽이라는 단어가 조금 극단적으로 보였는데, 확실히 자주 듣다 보니까. 또 인구절벽이라는 단어만큼 지금의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출산이 심각해지니까, 토론회가 자주 열린다. 나이가 꽤나 지긋하신 학자들은 ‘젊은 세대의 가치관이 문제다’라고 했다. 반대편의 젊은 학자는 ‘기성세대가 망쳐놓은 세상을 어째서 다음 세대가 복구해야 하냐’며 열변을 토했다. 지금을 꽤 많은 사람들이 ‘열린 사회’라고 말하지만, 닫힘을 지향하는 적들은 곳곳에 숨어있다. 현재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70년 대생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세대가 적이라 말했고, 또 8090년생들과 일부 00년 대생들은 2010년 이후, 알파 세대를 두고 ‘사회 악’이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출신 시기로 서로를 판단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악을 재생산하는 중이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세대 간 갈등은 더 심해졌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재작년 여름, 클럽 입장을 기다리는 20대들의 모습이 매일같이 보도됐다. 바로 이어서 5~60대들은 물놀이, 꽃놀이를 떠나는 모습이 바로 이어졌고, 박자를 맞추듯 ‘마스크는 너무 불편해요’라고 불평하는 인터뷰가 뉴스의 대미를 장식했다. 언론은 가십에 가까운,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이런 보도를 이틀에 한 번은 꼭 보도했다.


  하루 종일 꽁꽁 마스크로 입과 코를 싸매고 진 빠지게 일한 청년이 있다고 해보자. 청년은 퇴근 후, 쓰러지듯, 소파에 반쯤 누워 티브이를 보기 시작한다. 티브이 속엔 자신보다 살짝 어리거나, 혹은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한량들의 철없는 행동과 불평을 멍하니 바라보다 질색하며 티브이를 끄고, 스마트폰을 켠다. 알고리즘인지 뭔지가 추천 영상이라며 강제로 영상 하나를 재생시킨다. 지하철에서 20대 여성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60대 남성에게 욕을 퍼붓는다. ‘#폐륜’, ‘#민폐’, ‘#욕’, ‘#싸움’이라는 태그가 달린 혐오스러운 영상엔 아이러니하게도 ‘좋아요’가 달린다. 댓글엔 입장도 갈렸다. 욕하는 여자를 옹호하거나, 남자를 옹호하거나. 적어도 둘 다 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탁. 스마트폰도 꺼버린다. 갈등은 갈등으로서의 기능(그런 게 애초에 있었는지 조차 불분명해졌지만)을 잃고, 그저 쉽게 생성되고 또 그만큼 쉽게 소비되어 잊히는 가십에 불과해져 버렸다. 세대갈등이 가장 대표적이었지만, 성별, 국적, 인종, 심지어 키나 몸무게까지 갈등의 요소가 됐다. 수없이 복잡해지는 갈등구조 속에서도 사람들의 입장은 정확히 양분화되었다. ‘옳다’, ‘그르다’ 같은 구시대적인 감상이 아니라 어느 쪽에 더 흥미를 느끼는지에 따라서 각자의 편을 골랐다. 갈등은 놀이에 불과한데, 학자들은 저출산의 원인을 성 갈등으로 규정짓거나, 저조한 생산성의 이유를 이주 노동자와의 갈등에서 찾는다. 엉뚱한 논리지만, 사람들은 그렇다고 수긍해버린다.     


  갈등은 전 세계적인 문제다. 환경을 위한 친환경 때문에 선진국을 필두로 ‘전기차’ 수요가 폭증했다. 확실히 ‘전기차’는 매연도 발생하지 않는 ‘좋은’ 차임에 틀림없지만, 배터리를 만드는 데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했다. 자원 수급은 반도체처럼 몇 년이나 지속된 문제였다. 모든 자동차 제조 기업들은 ‘전기차’ 만들기에 혈안이었지만, 핵심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반도체와 배터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었다. 배터리 제조를 위해 필요한 원자재의 대부분은 콩고에서 채굴됐는데, 거의 모든 채굴권을 중국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선택을 받은 몇몇 기업들만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힘의 경쟁은 작년보다 더 팽팽해졌다. 미국은 반도체, 중국은 배터리를 무기로 삼고 서로를 견제했다. 오히려 지금은 중국 쪽이 좀 더 우세해 보인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미국도 굳건하다.     


  ‘갈등’ 같은 가십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도, 담배회사나 ‘MZ 세대는 적이다’ 같이 개인이 쏟아내는 광고도 모두 원하지 않았지만 알게 되어버린 지식이다. 머리에 칩을 달고 신이라도 된 듯, 쉼 없이 정치, 외교, 경제, 사회, 연예 정보를 쏟아내는 상사와 함께, 그의 말을 듣고 강제로 뉴스를 메인화면에 띄우는 스마트폰까지. 정보는 확실히 늘었는데, 점점 내가 정보를 선택할 권리는 사라져 버리는 듯 한 기분이 드는 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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