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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둔형 최작가 Apr 14. 2022

(Fly Me to the Moon) 3번.

2022.  (Moon) 3번: 미션, 생존(0413)

제3화. 미션: 생존


  인류의 염원을 담아 295명의 지구인이 달로 향했다. 완벽한 이륙에 보다 더 완벽한 착륙. 모든 과정이 또다시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첫 번째 이주민의 오른쪽 발이 달 표면에 닿았을 땐, 전 세계가 들썩였다. 새로운 땅. 달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인류. 모든 면면이 새로웠다. 기회, 희망, 꿈, 지속같이 뭔가를 이뤄내고야 말 것만 같고, 우리의 고통이 이젠 끝날 것만 같은 분위기는 몇 주 동안 지구엔 전쟁도 멈추게 했다.

   

  『드디어 해냈습니다.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지구의 모든 고객과 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 인류는 달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더불어 기대해 주십시오. 인류는 달에서도 지구에서 만큼의 성공을 꼭 이뤄내고야 말겠습니다. 295명으로 시작한 최초의 우주 정착민이 앞으로 2,000명, 20만 명으로 더욱 번창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십시오. 무한한 우주에 첫 발을 내디딘 인류는 더 이상 오염, 빈곤, 자원이나 영토의 부족, 갈등. 지구에서 겪은 실수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고, 가장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이룩해 내겠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격앙된 목소리, 환희와 확신에 찬 표정. 과도한 손짓까지, 여느 때와는 완벽히 다른 생경한 그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모든 지구인들이 새로운 희망에 벅차올랐던 시대였기 때문에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인류에겐 희망이 있을까. 그보다 먼저. 지금의 인류가 희망을 꿈꾸게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문제일까. 인류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295명의 이주민들은 달의 뒷면에 도착했다. 인간이 달에 착륙한 이후, 거의 100년이 가깝게 흐른 시점에도 ‘달 뒷면’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지구에선 동주기 자전에 따라 달의 앞면만 볼 수 있다. 화성도 새로운 식민지로 개척한다는 상황에서 왜. 달의 뒷면은 관찰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달 뒷면에 대한 정보는 59년 소련의 달 탐사선 루나 3호가 흐릿한 흑백으로 찍은 사진이 전부다. 그토록 미스테리한 공간에 인류가 새롭게 터를 잡았다.     


  로켓이 착륙했을 때를 맞춰 이동형 주택도 도착했다. 수많은 음모론치곤 달 뒷면은 꽤나 고요했다. 로켓에서 내려진 짐은 자동으로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고, 이 뒤를 따라 295명의 사람이 순차적으로 하차했다.      


  “달의 첫 주민이 되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우리 정착촌의 돔 공사와 테라포밍(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환경을 지구의 대기 및 온도, 생태계와 유사하게 바꾸는 작업)으로 오늘로부터 달 시간 기준, 3일 동안 각자의 방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목소리, 잘 정돈된 성우같이 오랜 기간 견고하게 단련된 목소리. 로봇에서 나오는 음성이라고 짐작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달 시간으로 3일, 그러니까 지구 기준으로 대략 3달가량을 자신의 숙소에서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295명의 달 주민들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각자의 방은 총 두 개의 침실과 하나의 거실, 화장실, 원탁과 두 개의 의자, 간단한 운동 따위를 할 수 있는 3평 남짓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각자의 방에는 집사 로봇이 배치되어 청소나 요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일부터 각종 교육까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거들었다. 295명의 295개의 방에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가장 편안하게, 가장 즐겁게, 걱정 없고, 행복한 신인류’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크게 남다르지 않은 295명의 사람들. 그들이 유일하게 지구에 남아있는 인류보다 더 특출난 면이 있다면, 바로 무료함을 견뎌내는 능력이다. 그들은 과연, 앞으로 펼쳐질 고통스러운 무위의 시간을 행복하게 견뎌낼 수 있을까.


  『달에 첫 번째 이주민들이 정착한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달 정착촌은 지금 지구의 환경과 동일하게 만들어가는 과정, 즉, 테라포밍이 진행 중입니다. 특별관리도 ‘달’는 자체적으로 물과 공기를 만들어내고 자연스럽게 이와 같은 환경을 서서히 달 전역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달의 인류가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 고객님들에게 희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자원을 더욱 저렴하고 신속하게 보내드릴 수 있도록 앞으로 달의 자원은 민간회사에서 직접 관리할 계획입니다.』     


  『선출직 대통령을 이뤄진 정부, 비효율적인 관료제에서는 고객님들의 원하시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단순히 돈을 위해, 정부의 책임 회피를 위함이 아님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달 자원 채취와 배송, 그리고 이와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민간회사에서 관리함으로써 고객님들이 ‘오케이’ 할 때까지 끊임없이 혁신하기 위한 결정입니다. 다만, 가격의 갑작스러운 폭등을 우려하시는 점 이해합니다. 이런 부분은 이미 민간 회사의 설립 과정에서부터 수익률이 30%를 넘을 수 없다는 강제조항을 포함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근거로 갑작스러운 가격 변동이나 폭리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고, 오히려 고객님들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서비스, 품격 있는 서비스를 받기만 하면 됩니다. 결과적으로 민영화는 전 세계의 고객님들과 우리 정부와 지구와 달의 모든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유일한 길이기에 과감하게 추진하게 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     


  사람들은 또 환호했다. 민영화라면 치를 떨었던 나라였다. 공공의 재화가 하나둘씩 민영화될 때마다 사람들은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언제나 그렇듯 민영화의 시작은 ‘고품질의 서비스’를 담보한다는 선언이었고, 민영화의 결과는 매번 높은 가격과 오히려 낮아진 품질로 귀결됐다. ‘민영화’에 반감을 갖는 게 당연했다. 어떤 상황이라도 ‘민영화’는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그의 ‘민영화’ 계획마저도 환호를 보냈다.     


  그의 발표는 빠르게 기사화되었고, 민영화와 함께 특별관리도 ‘달’ 정착 계획 전략이 공개되었다. ISRU(In situ resource utilization), 그러니까 현지 자원을 이용하여 달을 개발한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1단계는 무인으로 기반 시설을 닦아 놓고, 2단계는 사람이 들어가서 인간다운 사회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지금 진행 중인 ‘테라포밍’은 2단계의 첫 번째 단계에 해당했다. 그가 집권한 이후에 정부에서 발간하는 문서는 매번 3장을 넘지 않는다. 짧고, 쉬운, 그래서 조금 억지스럽지만, 대부분의 의문은 기자회견으로 해소되었다. 이번 문서도 역시나 설명은 부족했다. 테라포밍 이후, 자치 선거를 치르고, 달의 자원을 관리하는 기업은 본사를 달에 둔다는 정도의 내용이 무작위로 열거되어 있었다.


  ‘가장 편하게, 가장 즐겁게, 걱정 없고, 행복한 신인류’는 오히려 지구에서 유행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꼽는 최고의 직업은 ‘달 이주민’이라고 했다. 달에서의 삶은 두 가지 방식으로 지구인들에게 소개되었다. 루나 리소스(달의 자원을 관리하는 기업의 이름이다. 회사는 상장하지 않았다)에서 제작하는 홍보물에서는 달 전반의 경관이나 시설을 중심으로, 개인 방송은 달 이주민들의 개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특별자치도 ‘달’에 대해 설명했다.     


  지구의 시간으로 2개월 하고 3주에 5일 즈음되던 날, 달에선 3일의 마지막 여백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달에 도착하자마자 단 한 번도 중단 없이 방송을 이어갔던 크리에이터는 격리, 그러니까 테라포밍과 돔 설치가 완료되는 순간까지도 생중계했다. “이제 특별관리도 ‘달’의 환경은 지구와 완벽히 같아졌습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자동으로 295개의 문이 열렸다. 동시에 200개도 넘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쾌적했다. 지구랑 같다고 했지만, 오히려 지구보다 상쾌했다. 먼지도 없었고, 인공태양은 지구의 시간에 맞게 낮과 밤을 만들었다. 공조기 덕분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고, 원한다면 일정 시간 동안 바람을 멈출 수도 있었다. 게다가 모든 모서리는 동그랗고 폭신했다. 위험도 없고 날씨도 완벽한 세상이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지구인들은 모두가 부러워했고, 처음으로 시기하는 마음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능가하는 인기였다. 295명의 이름을 줄줄이 꿰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이런 관심을 극도로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지구에서 벌였던 흉악한 범죄사실이 드러난 사람도 있었다. 295명에 대한 과거의 모든 행적과 현재의 행동은 모두 가십거리가 되면서 몇 이주민들은 자신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무료함에 의지했다. 세상의 풍파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고자 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족하며 살아가고자 했다. 지금 달에서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의 지난 과거가 가장 큰 문제다.     


  무인 로봇, 이주민들의 집, 공용 돔과 더불어 달 앞면과 뒷면에 고루 분포된 수백 곳의 채굴장과 수천 대의 배송 로봇까지 곧장 민간기업의 소유가 되었다. 인수 비용은 거의 2경에 가까웠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정부와 루나 리소스에선 정확한 액수는 공개할 수 없다는 성명만 발표했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반대 없이 수용했다. ‘달 자원 지구 배송비 2년간 무료’, 기업의 통 큰 제안은 아주 미약하게 남아있던 불안마저 종식시켰다. 이번 인수합병을 보고, 일부 학자들은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올바르고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약속대로 루나 리소스 본사는 달의 앞면, 달 이주민 거주지와는 직선거리로 5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예전 관람 소가 있던 건물에 두 개 층을 더 증축하였다. 본사였지만 사람이 근무하진 않았다. 대부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지점에서 탐색, 채굴, 가공, 운반 같이 각 파트별 업무를 원격으로 처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나 리소스 본사에서는 ‘달’에 세금을 냈다. 물론 국가에도 냈고, 전 세계 지점들도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자리 잡은 국가에 연체 없이 세금을 납부하면서 성실하면서도 능력 있는 새 시대의 초일류기업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달에 대한 소식은 끊이지 않았다. 주요 언론사들은 매일같이 달과 관련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기사로 만들었다. 얼마 전엔 달과 관련된 설화도 특집기사 다뤘고, 달에서 채취한 자원을 활용한 최첨단 기술을 소개하는 코너는 고정이 되었다. 낮과 밤, 조수 간만의 차, 추석같이 파편적인 현상이나 형상화된 기억에 불과했던 달이 이젠 인류의 미래처럼 그려졌다. 뭔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 같았던 달의 뒷면은 소행성에 부딪힌 큰 구멍을 제외하곤 앞면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다. 그저 달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풍부한 자원이 있고, 모든 사람이 이주하고 싶어 하는 가장 이상적인 거주지였다.


  달에서 채취한 광물은 아주 소량으로도 극단적인 출력을 냈다. 스마트폰을 구입하면, 새로운 제품으로 교체(평균 3년을 주기로 스마트폰을 교체한다)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충전하지 않게 되었다. 비단 스마트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웨어러블이 충전 없이도 작동했다. 그토록 바라던 탄소중립은 의외의 원인으로 쉽게 달성됐다. 사람들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졌다. 우리의 미래, 가장 편하고, 즐겁고, 걱정 없는 신인류는 달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믿음은 절대 깨지지 않을 이론처럼 굳혀졌다. 달 덕분에 지구는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변했지만, 지구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을 부러워했다.     


  달의 생활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집사 로봇이 차려놓은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하고, 지구의 방송을 보거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운동을 할 수 도 있었다. 어떤 누구도 일을 하지 않고, 또 모두가 동일한 조건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빈부의 격차 따위도 없었다. 게다가 집사 로봇들은 이주민들의 질병을 미리 발견하여 치료했다. 어떤 차별도 없었고, 누구도 아프지 않았으며, 무엇하나 누리지 못하는 게 없는 삶을 이어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차, 3차로 계획된 이주민 선발계획은 계속해서 보류됐다. 달의 사람들은 모든 인류의 머리 위에서 가장 평화롭게 살아갔다.     


  평화, 안온한 생활 속에서 달 이주민들은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살았다. 모두가 꿈꾸는 완벽한 생활 속에서 무료함은 더욱 커져갔고,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그들에게 삶의 목적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지구의 사람들은 달 이주민들의 진실을 모른다. 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고통스러웠던 지구를 그리워했고, 향수병은 쉽게 전염됐다. 달에선 술이나 담배를 구할 수 없었지만, 수 차례 수감된 경험이 있는 이들이 앞장서서 발효음료를 만들고, 땅콩 껍질 따위로 담배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과 담배는 자연스럽게 달 정착촌의 양쪽 구석에서 소비되었다. 극도로 깔끔했던 정착촌의 양쪽 극단은 금세 생기를 잃었다. 물론 로봇들이 누군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 때마다 청소했지만 묘하게 찌든 매캐한 담배 냄새와 거칠게 발효된 음료의 은은한 내음, 또 이를 마시고 뱉어낸 사람들의 역한 숨까진 완벽히 없애지 못했다. 완벽한 세상은 양쪽 극단부터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 극단에 위치한 거주자들은 방의 재배치를 주장했다. 물론 그중에도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이들이 상당수였지만, 자신의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탈을 자신들만 감당하는 게 불공평하다는 이유였다. 그들의 요구, 정확히 불만은 지구의 논리였다면 꽤나 합당했겠지만, 개인이 온전하게 소요할 수 있는 재산, 재화를 인정하지 않는 달에선 이야기가 달랐다. 295명의 사람 중, 어떤 누구도 지금의 방 배치에 관여하지 않았다. 게다가 돔 안에서의 편의시설은 중간이나 양끝의 구분 없이 정확하게 동일한 해택을 누릴 수 있었다. 17~19세 청소년의 걸음걸이로 대략 29.5걸음이면 공용으로 활용 가능한 테이블이나 의자, 벤딩머신, 운동시설까지 활용 가능했다. 모든 거주자들이 자신의 문 앞에서 29.5걸음만 걸으면 이러한 모든 시설을 누릴 수 있었기에, 양극단이 슬럼화 되기 전까진 완벽하게 평등하다고 느껴질 만한 공간이었다.     


  두 곳으로 분리된 양극단의 사람들은 ‘민주주의 정신’을 내세웠다. 물론 양극단을 제외한 다른 주민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술과 담배가 유통된 후, 이전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었다)하고, 완벽한 이곳에서 서로가 으르렁거리며 분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쪽에선 ‘민주주의’를 또 다른 한쪽에선 다수결은 ‘완벽한’ 우리 세상을 망치는 적이라고 외쳤다. 그 와중에, 은근슬쩍, 술과 담배를 만들던 이들(교도소를 경험한 10명의 남녀였다)도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 달라며 세상에 요구했다. 달 정착촌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탁자 위에서 마흔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 211번(원형 탈모가 꽤 오래 진행되어 실제로는 보다 어릴지도 모른다)은 술과 담배를 제조하는 자신들의 무리는 ‘길드’고, 자신들이 편안하게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거주지 2곳을 작업실로 제공해 달라고 했다. 양극단 사람들의 요구와는 다르게 ‘길드’의 요구는 꽤나 흔쾌히 수용되었다. 물론 때마침 동거를 시작한 세 커플의 거주지 세 곳이 작업실로 지적됐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이런 억지가 어딨어요?”

  “뭐가 말이 안 돼, 당신도 술 마셨잖아. 게다가 담배 피우는 모습도 몇 번이나 봤는데!”

  “그렇다고 꼭 우리를 지적할 필요가 있어요? 투표해야죠, 투표”


  다수의 사람이 웅성거렸다.     


  “다수결은 우리의 적, 다수결은 우리의 세상을 망치는 적”


  정착촌 중앙에 모인 거의 모든 이들이 동요했다.     


  211번은 탁자 위에 의자를 올려놓고, 그 위에 올라가 연설하기 시작했다. “다수결은 비합리적입니다. 다수결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건 여러분 모두가 알고 계실 겁니다. 아무리 이곳이 완벽한 곳일지라도, 우리는 더 행복해져야 하고, 우리는 꼭 살아남아야만 합니다. 행복하게 살아남는 우리는 인류의 희망입니다. 삶의 매 순간이 긴박한 비상 상황인 우리는 기필코 최선, 항상 최고의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다시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다수결이 최선입니까?”


  사람들은 환호했다. “아니요, 다수결은 우리의 적입니다” 이구동성, 사람들의 외침은 제각 기였지만, 다수결이 우리의 생존에 불리한 선택임은 동일했다. 자연스럽게 술과 담배를 만드는 211번을 포함한 열댓 명의 이들은 세 곳의 거주지를 작업실로 얻게 됐고, 또 다른 한편으로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한 세 커플은 자신의 거주지를 내어주었다. 모두가 행복한 길, 최선의 선택이었다.


  세 커플과 양극단의 이들은 좀처럼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다수를. 그러니까 211번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다수결이잖아’하고, 구시렁거렸지만 불만을 늘어놓으면 술이나 담배를 얻을 수 없게 될까 봐서 불평도 길지 않은 선에서 그쳤다. 옥신각신하는 인간들의 투쟁을 뒤로하고 오늘도 달의 앞면에선 쉬지 않고 자원을 채취하고, 가공하고, 배송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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