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하얀 피부, 고운 말씨 – 미화
미화는 교실 안에서도 늘 빛나는 아이였다.
말 그대로 눈에 띄었다. 눈부셔서가 아니라, 뭔가 또렷하고 맑은 기운이 미화에게선 풍겨 나왔다.
선생님도 미화를 참 예뻐하셨다. 미화가 전학 온 날, 나는 처음으로 ‘하얀 피부’라는 게 뭔지 알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얼굴이 벌겋게 익은 구릿빛이었다.
햇볕에 들판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피부가 늘 까무잡잡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대부분 그랬다.
아이들 대부분이 나처럼 논두렁 개울가를 맨발로 뛰어다니며 자란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미화는 달랐다.
첫인상부터 너무 하얘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햇볕 한 줌 들어가지 않은 그 얼굴이 신기했고, 손등마저 투명해 보였다.
그날, 난 속으로 몇 번이나 '참 곱다'라고 생각했다.
미화는 말도 참 곱게 했다.
선생님께 “네” 하고 대답할 때 목소리는 맑은 종소리처럼 또렷했는데,
그 말씨에서 다정함이 묻어났다.
우리처럼 쿡 찌르며 말하거나, “야” 하고 부르지 않았다.
조금 멀리 있어도 조심스럽게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고, 말을 시작하기 전엔 꼭 눈을 맞췄다.
미화의 그런 태도는 처음엔 좀 낯설었다.
아이들 사이엔 대충 “가자” 한 마디면 되는 걸,
미화는 “같이 가면 좋을 것 같아”라며 말을 했다.
근데 이상하게, 그런 말에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교실 안에서 미화는 늘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면 먼저 손을 들었고, 대답은 명료했다.
어떤 문제든 머뭇거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잘난 척을 하거나 나서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 안에는 늘 작은 배려와 관찰이 숨어 있었다.
가끔은 미화가 선생님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다가도 미화가 조용히 말하면 웬일인지 다들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에 힘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미화는 우리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말을 했고,
그 눈빛에는 우리를 ‘무시하지 않는’ 특별함이 있었다.
내가 그런 미화를 부러워하게 된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슬며시 마음을 열게 된 것도,
다른 친구들과 조금은 다르게 말을 걸어준 그 한순간이었다.
“미순아, 너 오늘 글씨 되게 예쁘게 썼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 칭찬을 그날 하루 종일 품고 다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집에 와서도 그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날 일기장에도 그 말을 적었다.
‘미화가 내 글씨를 예쁘다고 했다. 나도 미화처럼 되고 싶다.’
세상엔 좋은 영향을 주는 아이들이 있다.
미화는 그런 친구였다.
하얀 피부, 고운 말씨, 단정한 태도.
그 모든 것이 우리 반에 작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