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나는 뛰고, 언니는 앉았다
나는 뛰고, 언니는 앉았다
나는 동네를 누비는 아이였다.
남동생 둘을 앞세우고, 때론 뒤에서 밀며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어디가 놀이터고, 어디가 오줌 싸기 좋은 골목인지
누가 언제 사탕을 나눠주는지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나는 나를 책임지는 동시에
동생들의 손도 꼭 쥐고 있었다.
그건 누구의 시키는 일도, 부탁도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움직이는 게 내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너무 어려서부터.
아빠는 우리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걱정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집안일이 바쁠 때는
온 가족이 나서서 움직였다.
쌀을 씻고, 장작을 정리하고, 걸레를 빨고, 물을 길었다.
‘딸’이라는 말보다 ‘손’이라는 말이 더 자주 들렸다.
“한 손 더 필요하다.”
그러면 나는 내 손을 내밀었다.
그 사이, 언니는 일요일에만 집에 있었다.
그것도 온종일은 아니었다.
일요일에도 학교에 가는 날이 많았고
집에 있는 날에도 대부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언니는 집안일을 웬만큼 후딱 해치우고
앉은뱅이책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엎드리듯, 다소곳이, 묵묵히 앉아
자격증 공부를 했다.
책상 위엔 항상 빽빽하게 적힌 노트,
샤프심 깎아 넣는 소리, 그리고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 눈.
나는 뛰었고, 언니는 앉았다.
나는 바깥으로 달리고,
언니는 조용히 안으로 파고들었다.
때로는 마루에 걸터앉아 쉬는 언니의 옆모습을
문득 지나가며 바라보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어쩐지 어려워 보였다.
나는 왜 저렇게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을까?
책이 뭐가 재미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언니는 질문보다 조용함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동네를 누비는 나와
마루에 앉은 언니는
마치 두 개의 시계처럼
각자의 속도로 하루를 돌렸다.
우리는 같은 집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리듬 속에 살았다.
나는 그 시절, 나의 발소리를 기억하고
언니는 자신의 손끝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라는 시간 속을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