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명절 고요한 우리 집
《명절, 고요한 우리 집》
– 오래된 천조각
명절이 가까워지면 동네는 들썩였다.
각 집마다 전이 익는 냄새, 웃음소리,
친척들이 도착하는 소란함이 멀리서도 들려왔다.
하지만 우리 집은 조용했다.
마치 명절이 오지 않은 것처럼.
아빠는 두 살 때부터 외갓집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명절에도 우리 집엔
친척이 오지 않았다.
항상 우리 가족뿐이었다.
다른 집 아이들이 사촌들과 들떠 놀 때,
나는 동생들과 마루에 앉아
소박한 전을 집어먹으며 웃곤 했다.
그렇게 외롭고 쓸쓸한 명절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평소보다 분주한 부엌,
아침부터 잔치처럼 차려진 밥상,
엄마가 정성 들여 만든 송편,
아빠가 미소 띠며 따라주는 수정과.
명절 아침만큼은
우리 집도 다른 집 못지않게 붐볐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나면
아빠는 작은 쟁반에
몇 가지 음식을 조심스레 담아
조용히 집을 나섰다.
나는 그런 아빠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집 앞 왼쪽, 비스듬한 야산으로 향했다.
풀잎이 눕고 이슬이 마른 숲길 끝,
작은 봉긋한 흙더미 앞에
아빠는 쟁반을 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곳이 언니의 무덤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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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말없이 허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조용히
태평소를 꺼내 들었다.
긴 숨을 들이마시고
그분만의 가락으로
서늘하고 그리운 음을 불어넣었다.
아빠의 태평소는
슬픔보다 더 깊고,
그리움보다 더 조용했다.
그날,
나는 명절의 진짜 의미를
처음으로 어렴풋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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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차는 16화, _“아빠와 함께 간 야산의 비밀”_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