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세상고 나 사이

19화 포도주스를 맛보고 대길이가 웃었다

19화. 포도 주스를 맛보고, 대길이가 웃었다

일요일 낮,

나는 마당에서 또 포도 주스를 만들고 있었다.

작은 양은 냄비에

설탕과 포도를 넣고

조심스레 저어가며 졸이던 중이었다.


그때,

남동생의 친구들이

사랑방으로 놀러 들어왔다.


우리 집 사랑채는

남동생. 둘이. 함께 쓰던 방이었다.

아빠와 이모부가 조금 넓히고

단열도 잘해놓아

겨울에도 따뜻한 방이었다.


그 아이들 무리 중에는

우리 반 친구 ‘대길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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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이는

우리 반에서 가장 키가 작아

항상 출석번호 1번,

맨 앞자리에 앉는 아이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아이와 딱히 가까울 일도,

부딪힐 일도 없었다.

그저 조용하고 작고,

조금은 수줍어 보이던 아이.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대길이는 남동생과 함께

우리 동네에 자주 들렀다.

버스정류장 너머,

우리 집 사랑채를 찾아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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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포도 주스를 만들고 있을 때

대길이가 다가왔다.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응, 샌드위치도 할 줄 알아.”

“진짜 대단하다.”

그렇게 말하며

대길이는

내가 만든 주스를 조심스레 마셨다.


“진짜 맛있다.”


그 말 한마디가

괜히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괜히 우쭐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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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길이는

우리 집과 제일 가까운 곳에 사는 같은 학년 친구였다.

1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지만

그날 주스 한 잔을 마시기 전까진

그리 친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아이는

왠지 모르게 눈에 자주 들어왔다.


늘 1번 자리에 앉은

작고 조용한 아이.

내 요리를 맛보고

정말 맛있다며 웃어준 친구.


어쩌면

나도 모르게

그날부터

조금씩 그 아이를 ‘알게 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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