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대문 앞에서

8화. 종로, 그리고 책의 숲

8화. 종로, 그리고 책의 숲

오빠는 방학이 되자마자 나를 종로에 데리고 갔다.


“내일 종로 나가자.”

오빠가 말했다.


“종로요?”


나는 낯선 이름이 어색해 되물었다.

오빠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했다.


“서울 와서 종로도 안 가보면 안 되지.”


엄마도 식당 일을 하시다 말고

“그래, 좋지. 동네만 알면 뭐 하니. 선영이도 좀 바람 쐬어야지.”

하시며 내 목도리 끝을 정리해 주셨다.


그렇게 다음 날,

우리는 아침 어묵국으로 속을 데우고

동네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지만,

오빠를 따라 타고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일은 이상하게도 설렜다.


종로에 도착하자

거리는 활기찼고, 사람들 발걸음은 빠르고 확실했다.

겨울 햇살은 회색 건물 벽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고,

길가 노점에서는 붕어빵과 호떡 냄새가 눈길을 잡아끌었다.


사람들 사이를 따라 걷다가

오빠가 어느 순간 멈춰 섰다.


“여기야. 종로서적.”


커다란 유리문 너머,

빌딩 전체가 서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시골에서 다녀봤던 작은 책방은 책장이 서너 개뿐이었고,

참고서와 학습지, 잡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공기와 함께 익숙하면서도 낯선 종이 냄새가 밀려들었다.

각 층에는 큼직한 표지판이 걸려 있었고,

‘청소년 문학’, ‘역사와 문화’, ‘에세이’, ‘문학/시’,

그리고 내 눈을 멈추게 한 ‘하이틴 소설’이라는 팻말도 있었다.


“나는 문제집 코너 좀 보고 있을게.

너는 보고 싶은 데 다녀와.”


오빠가 그렇게 말하고 올라간 뒤,

나는 하이틴 소설 코너로 걸음을 옮겼다.

책장 앞에 선 순간,

나는 말 그대로 세상에 처음 온 사람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알록달록한 표지,

수줍은 고백, 교복 입은 소년과 소녀,

겨울 골목에서 나누는 짧은 말들.

그 안엔 지금의 내 마음과 닮은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페이지를 넘기자

문장마다 설레는 기운이 느껴졌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

하지만 아직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그 안에 조용히 담겨 있었다.


‘이런 책, 시골에선 못 봤는데…’


나는 작은 시집 하나와 얇은 소설 한 권을 들고

조심스럽게 계산대로 향했다.


오빠는 먼저 나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점 근처 골목 안 작은 떡볶이 가게로 들어갔다.


“여기 떡볶이 진짜 맛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집이야.”


플라스틱 의자, 동그란 철제 테이블,

김 서리는 창문과 얼큰한 국물 냄새.

서울이 낯설게만 느껴졌던 나에게

이 순간은 처음으로 ‘따뜻한’ 서울이었다.


오빠는 주문을 하고, 나는 책 봉투를 조심스레 안고 앉았다.


“그거 재밌어 보여?” 오빠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응, 뭔가… 내 얘기 같아.”


떡볶이는 정말 맛있었다.

국물은 얼큰했고, 밀떡은 쫄깃했고,

어묵 국물은 찬 손을 데워주는 것 같았다.


그날, 종로 거리에는 얇게 눈발이 흩날렸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창밖 어스름한 풍경을 바라보며

서울이 그렇게 멀기만 한 곳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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