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깃발과 박수, 그리고 그해의 서울
20화. 깃발과 박수, 그리고 그해의 서울
1988년의 서울은 특별한 냄새가 났다.
버스 창 너머로 보이던 도시의 벽엔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가 그려진 포스터들이 바람에 흔들렸고,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로 서두르듯 움직였다.
나는 아직 서울이 어색했다.
서울말은 빠르고 단단했고,
횡단보도 신호는 너무 짧았으며
길거리의 노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그해,
그 모든 낯섦 속에
하나의 공통된 흥분이 있었다.
바로 올림픽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오는 거야.”
하영이는 체육시간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개회식에 우리가 나갈 수도 있어!”
학교 운동장은 매일같이 울려 퍼지는 율동 음악,
장갑을 끼고 박수를 맞추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하얀 장갑이 번쩍이고,
머리 위로 흔드는 천 조각들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선생님은 율동이 흐트러질 때마다
“이건 나라를 대표하는 일이야!”
하고 목소리를 높이셨고,
우린 그 말에 자꾸 자세를 고쳐 앉았다.
TV에선 매일 올림픽 뉴스가 나왔다.
종로서적에 갔을 땐
올림픽 엠블럼이 찍힌 노트, 배지, 필통까지
모든 물건이 갑자기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신기했다.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하루를 사는 아이들이
단지 이 도시 서울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 커다란 일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느 날, 식당에서 이모는 나에게 물었다.
“너도 올림픽 보고 싶지? 아르바이트 선생이 표 한 장 생겼다던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너무 보고 싶었지만
그저 TV로 본다 해도,
내가 지금 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한 자락을
조금은 안고 있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엄마, 여기선 진짜 난리야. 버스마다 호돌이가 있어.
학교에서도 율동만 해. 근데… 신기하고, 좋아.”
엄마는 조용히 웃으셨다.
“많이 보고 와. 선영인 좋은 시대에 태어났네.”
그해의 서울은
불빛이 넘실거렸고,
거리의 깃발들은 바람결에 춤을 추었다.
나는 여전히 서울이 낯설었지만
그 특별한 해의 열기 속에
조금씩,
내 이름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