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책과 공부, 그리고 하영이
제57화: 책과 공부, 그리고 하영이
하영이는 나처럼 책을 좋아했다.
우린 하이틴 소설에 푹 빠져 있었고, 새 책이 나오면 서로 먼저 보겠다고 장난스럽게 다투기도 했다.
“이건 내가 먼저 찜했어!”
“야, 어제 네가 먼저 읽었잖아!”
그렇게 웃으며 하루에 세 권도 거뜬히 읽었다.
마치 책 속에 들어가 사는 것처럼, 우리에겐 현실보다도 소설이 더 흥미진진했다.
서로 돌려 읽은 책 속에서 공감하고, 같은 장면에서 웃고, 때로는 슬퍼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책 이야기를 하다가 아침 자율학습 시간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고, 쉬는 시간에도 계속 이야기꽃이 피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책을 읽고 수다 떨고 같이 다니면서도, 하영이는 전교에서 항상 3등 안에 들었다.
나는 중간도 겨우 넘기면 다행이었는데 말이다.
“하영아… 너 도대체 언제 공부해?”
내가 어느 날 진지하게 물었다.
하영이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냥, 시간 나면 해. 책 읽는 것도 공부 같고… 선영이 너랑 얘기하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돼.”
하지만 난 알 것 같았다.
하영이는 내가 모르는 사이, 아마 밤에도 혼자 책상에 앉아있을 것이다.
졸린 눈 비비면서 문제를 풀고, 낯선 개념들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의 책가방은 언제나 무거워 보였고, 필통 안은 항상 정돈되어 있었다.
심지어 중학교 과정을 거의 끝내고, 고등학교 교재까지 조금씩 공부한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땐 깜짝 놀랐다.
‘머리가 다른가 봐…’
솔직히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하영이는 늘 내 옆에 있었다.
내가 모르는 문제를 물으면 친절하게 설명해 줬고, 나보다 먼저 책을 읽어도 스포일러는 절대 말하지 않았다.
시험기간에도 내 걱정을 먼저 해주었고, 가끔은 공부 팁도 알려줬다.
그게 참 고마웠다.
우린 달랐다.
속도도, 방향도.
하지만 같은 길을 걷는 친구였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계절을 지나며 함께 성장하는 사이.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공부는 잘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사람에게도 의미 있다는 걸.
하영이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용기 내어 교과서를 펼칠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도, 나도 언젠가 잘할 수 있을 거란 믿음도—
모두 친구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