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29화 전기불이 켜지던 날

《오래된 천조각》 29화

〈전깃불이 켜지던 날〉


그날,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다고 했다.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동네가 웅성거렸다.

이장님이 확성기로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말했다.

“오늘 저녁, 드디어 전깃불이 들어옵니다—!”


나는 콩닥콩닥, 심장이 뛰었다.

평소와는 다른 저녁이 될 것 같았다.


**


그날 저녁, 해가 지고도 우리는 불을 켜지 않았다.

호롱불도, 등잔불도 켜지 않고

온 식구가 마루에 나와 앉아 있었다.

엄마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고,

아빠는 배선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담배를 피웠다.


“곧 켜진다더라. 전깃불이.”

큰언니가 속삭였다.


우리 형제는 서로 눈을 맞추며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하나둘 떠오르던 그 무렵,

문득 마을 끝 전봇대 위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났다.


**


그리고, 켜졌다.

진짜였다.

우리 집 천장 한가운데서

백열등이 번쩍 하고 빛을 냈다.


“우와—!”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감쌌다가

조심스레 다시 떴다.

그 빛은 낮보다 밝았고,

등잔불과는 전혀 다른, 하얗고 또렷한 빛이었다.


그 순간 우리 집은

더 이상 촛불과 호롱불 아래가 아니었다.

전깃불 아래,

진짜 도시처럼 반짝였다.


**


엄마는 오래 쓰던 등잔을 조용히 한쪽으로 밀어두셨다.

아빠는 백열등 밑에 앉아

“이제는 너희도 눈 덜 나빠지겠네.” 하시며

괜히 기침 한 번 하셨다.


큰언니는 그날부터

학교 숙제를 더 늦게까지 했고,

나는 내 그림일기를 전깃불 아래 처음 썼다.


‘오늘 우리 집에 불이 들어왔다.

눈부셔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렇게 적었다.

지금도 그때 썼던 일기장을 보면,

백열등 불빛 아래 삐뚤빼뚤한 글씨가

아직 따뜻하게 남아 있다.


**


전기가 들어온 그날,

우리 집은 조금 더 밝아졌고

식구들 사이도 조금 더 가까워졌다.

마당에 서서 등을 켠 채 서로 얼굴을 바라보던 그 밤,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에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이

지금도 내 기억 한가운데

반짝이는 불빛처럼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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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천조각》 29화

〈전깃불이 켜지던 날〉

“불빛 하나로 바뀐 저녁의 풍경.

그날 우리는 함께 웃었고,

그 불빛은 아직도 내 마음속에 환하게 켜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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