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30화 아빠의 자전거

《오래된 천조각》

30화. 아빠의 자전거


아빠는 농사꾼이었다.

해마다 농번기가 시작되면 더 이상 시간이라는 것이 의미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빠의 하루도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나는 새벽 4시에 들려오는 아빠의 잔기침 소리를 기억한다.


마치 우물가에 물을 퍼올리듯,

아빠는 늘 그 시간쯤 마당에 나와 기침을 하셨고,

나는 그 기침 소리를 알람 삼아 잠에서 깨곤 했다.

눈을 꼭 감고 있어도 아빠의 ‘크흠’ 소리가 들리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고,

그게 우리 집 아침의 시작이었다.


아빠는 부지런히 자전거를 끌고 나가셨다.

앞바퀴에 흙이 잔뜩 묻은 오래된 자전거.

아빠는 그걸 타고 마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논을 돌며,

모든 작물과 땅을 하루도 빠짐없이 점검하셨다.


때때로 나는 그 자전거 뒤에 앉아 같이 논길을 달렸다.

흙먼지가 뿌옇게 이는 좁은 길 위를

빠르게, 또 천천히 달리는 그 순간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아빠의 셔츠에서 풍겨오는 햇볕 냄새,

페달을 밟을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

그리고 바람을 가르며 들려오는 내 노랫소리.


“논에는 벼가 자라고~

아빠랑 미숙이는 달려가고~

두둥실, 구름도 따라온다~”


내가 아는 노래는 몇 곡 되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내가 만든 노래였다.

가사도, 멜로디도 모두 미숙이표 작사 작곡.

아빠는 묵묵히 페달을 밟으며 내 노래를 다 들어주셨고,

나는 신나서 논길이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불렀다.


그 시절, 아빠의 자전거는 내 세상이었다.

집을 벗어나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탈것이었고,

나를 노래하게 만드는 마법의 마차였다.


요즘은 자전거보다 빠르고 편한 것들이 많지만,

그때 그 쇳덩이 자전거만큼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 건 아직 없다.


이따금, 꿈속에서 아빠가 자전거를 타고 마당에 들어오신다.

나는 여전히 아빠 뒤에 타고 있고,

논길 위를 달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두둥실, 구름도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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