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끝에서 본 세상

31화 머리. 깎는 날

《오래된 천조각》

31화. 머리 깎는 날


햇빛이 마당을 환하게 비추던 어느 봄날,

아빠의 부름에 우리 형제들은 앞마당 마루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바람은 살랑이고, 마당엔 오래된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아빠는 잠바 소매를 걷고 이발 도구를 꺼내셨다.

그날, 우리 집에 작은 이발소가 생긴 것이다.


“먼저 너부터 앉아라.”

아빠는 막내 동생을 부르셨다.

그렇게 순서는 동생, 나, 그리고 막내.


아빠는 능숙한 손길로 동생의 머리를 다듬었다.

나는 차례가 오기 전까지 긴장 반, 기대 반으로 마루 끝에 앉아 있었다.

곧 내 차례가 되어 의자에 앉았을 때,

나는 주문처럼 말했다.


“앞머리는 일자로… 단발머리로 해주세요.”


아빠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는 턱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햇빛이 눈부셔 자꾸 눈을 감게 되었지만,

그날의 나는 왠지 아주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아빠는 말이 없었지만,

머리카락을 자르는 손놀림은

자식 하나하나를 다르게 기억하고 다르게 사랑하는 것처럼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머리가 조금 짧아졌을 뿐인데

나는 갑자기 키가 커진 듯했고,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 만큼 새로웠다.


그날 마당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봄바람을 타고 마루 끝으로 흩날렸다.

그 사이로 형제자매의 웃음소리가

햇살처럼 번져나갔다.


그 시절, 우리 집에 미용실은 없었지만

아빠가 있는 마당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발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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