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골목

49화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기억의 골목 49화

남동생이 태어나던 해, 나는 조금 외로워졌다

파란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살게 된 그해부터
아빠는 서울에 가지 않으셨다.
이젠 떠날 필요가 없었다.
밭이 늘었고, 일손도 늘었다.
엄마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농사일은
자연스레 아빠를 집으로 데려왔다.

내 기억 속 아빠는
그 무렵부터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셨다.
늘 해가 뜨기 전 마당을 서성이다 밭으로 향했고
저녁이면 고단한 몸을 씻고
어두운 마루에 앉아
우리와 밥을 나눴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가족’이 되었다.
하루를 함께 시작하고,
함께 마무리하며,
슬레이트 지붕 아래
우리의 날들은 조금씩
따뜻하게 쌓여갔다.

그리고 그 따뜻함이 정점에 다다른 어느 날,
슬레이트 집에 새 생명이 태어났다.
엄마의 다섯 번째 아이.
우리 집의 첫아들.
내 남동생이었다.

나는 그때 겨우 세 살이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뿌옇고,
가끔은 이야기를 듣고
내가 그랬던 것 같다고 믿는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생이 태어난 그 무렵의 감정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선명히 남아 있다.

엄마와 아빠는
아들을 품에 안고 조심조심 걸었다.
그 품은
언니도, 미경 언니도, 나도 받지 못했던
무언가 다른 특별함이 느껴졌다.
당시엔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특별함은 ‘기다림’과 ‘간절함’의 무게였으리라.

나는 말 못 할 어떤 질투를 느꼈고
말 못 할 어떤 슬픔에 울컥했다.
아직 말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지만
그 감정만은 또렷이 안다.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이 조금 멀어진 기분.

이런 말도 안 되는 감정이
어린 마음에도 있었던 걸까.
나는 그 시절 내 자리에서
조금 비켜선 느낌을 받았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내 눈길은 동생을 안은 엄마의 품을 향해 있었다.

그해, 나는 처음으로
‘사랑은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라
모두에게 다르게 주어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동생을 예뻐하는 일은
어느새 내 일이 되었고,
나는 또다시 가족의 품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갔다.

우리가 살던 슬레이트 지붕 집은
그 모든 감정의 흐름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은 내 꿈속에 그 집이 나온다.
초록의 밭과 붉은 마당,
그리고 사랑이 머물렀던
조금은 쓸쓸했던 그 시절의 마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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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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