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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골목

93화

93화. 자개장과 국수 기계

엄마는 자개장을 갖고 싶어 하셨다.

문양 반짝이는 그 장롱을

거실 한편에 두고

양말부터 속옷까지 곱게 접어

한 칸씩 정리해 넣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동네에 자개장 파는 상인이

트럭을 끌고 왔던 날,

엄마는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저거, 곱다…”

하셨다.

그 말끝에 묻어난 아쉬움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


엄마는 어느 날

할부로 냄비 세트를 들여왔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냄비는

금방 김이 서리고,

무언가 특별한 식탁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국수 뽑는 기계.


그건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주방기구 이상이었다.

명절이면 밀가루 반죽을 하고,

엄마는 기계에 넣어 돌리며

가늘게 뽑힌 면을 받아 국수를 삶았다.


잔치국수, 콩국수, 비빔국수...

언제나 푸짐했고,

엄마표 국수 한 그릇에

마을 어른들도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


**


엄마는

자개장 하나 사고,

냄비 하나 들이고,

국수기계 하나 돌리는 일상이

살림을 하나하나 장만해 가는 꿈이었다.


그 시절 엄마의 그릇들엔

꿈이 담겨 있었고,

그 꿈은 결국

우리 밥상 위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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