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93화. 자개장과 국수 기계
엄마는 자개장을 갖고 싶어 하셨다.
문양 반짝이는 그 장롱을
거실 한편에 두고
양말부터 속옷까지 곱게 접어
한 칸씩 정리해 넣고 싶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동네에 자개장 파는 상인이
트럭을 끌고 왔던 날,
엄마는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저거, 곱다…”
하셨다.
그 말끝에 묻어난 아쉬움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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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느 날
할부로 냄비 세트를 들여왔다.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냄비는
금방 김이 서리고,
무언가 특별한 식탁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또 하나,
국수 뽑는 기계.
그건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주방기구 이상이었다.
명절이면 밀가루 반죽을 하고,
엄마는 기계에 넣어 돌리며
가늘게 뽑힌 면을 받아 국수를 삶았다.
잔치국수, 콩국수, 비빔국수...
언제나 푸짐했고,
엄마표 국수 한 그릇에
마을 어른들도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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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개장 하나 사고,
냄비 하나 들이고,
국수기계 하나 돌리는 일상이
살림을 하나하나 장만해 가는 꿈이었다.
그 시절 엄마의 그릇들엔
꿈이 담겨 있었고,
그 꿈은 결국
우리 밥상 위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