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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골목

99화

98화. 아빠와의 겨울 귀가길

아빠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더디고, 더뎠다.


**


술에 취한 아빠는

동네가 떠나가라 노래도 부르고

갑자기 소리도 지르신다.

그 밤이 되면

아빠의 마음속 용기도 같이 깨어나는 듯했다.


**


나는 혹여

아빠가 넘어지실까

등을 밀어드리고

팔짱을 끼며 걷는다.

아빠는 휘청휘청,

나는 꿋꿋하게.


**


한참을 걷다가

아빠는 또 걸음을 멈추신다.

그리고 서러운 옛 이야기를 꺼내신다.


"그땐 말이다…

아무도 없었어…

나 혼자였지…"


**


나는 어린 마음에

아빠의 말뜻을 다 알진 못했지만

그 외로움만큼은 알 것 같았다.

춥고 깜깜한 밤,

서러움에 떨고 있는 사람은

아빠만이 아니었을지도.


**


"아빠, 이제 가요…

엄마가 기다리셔…

춥잖아요."


나는 달래고 또 달랜다.

그렇게 아빠의 걸음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집으로 옮겨 드린다.


**


그 밤의 길은

너무나 길었지만

아빠의 등을 밀며 걷는 나는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그 밤,

나는 가장 어린 보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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