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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골목

95화

95화. 겨울, 시골의 베짱이들

겨울의 시골은
참 다이내믹하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말 그대로 개미처럼 산다.
해뜨기 전부터 밭에 나가
해질 무렵까지 땀 흘리고,
비 오기 전, 추석 전, 김장 전…
언제나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모두가 한순간 베짱이가 되어버린다.

**

아이들은 마을 여기저기 몰려다니며 논다.
썰매, 눈싸움, 고무줄놀이…
하루 해가 짧아서 아쉬울 정도였다.

어른 남자들은
언덕 위 구멍가게 사랑채에 모였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따뜻한 아랫목에 모여 앉아
술 한 잔 기울이며
화투, 윷놀이에 빠지곤 하셨다.

동전 내기도
판이 커지고
밤새는 날도 있었다.

그중엔 우리 아빠도 계셨다.
흥이 많았던 아빠는
그 사랑채의 분위기를 더 뜨겁게 만들곤 하셨다.

**

겨울, 시골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사람들 마음은 따뜻하고
흥은 넘쳤다.

그 겨울, 아빠의 웃음소리가
사랑채 문 밖까지 울려 퍼졌던 기억.
나는 그 소리가
겨울의 음악처럼 느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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