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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골목

88화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88화. 꼬이고 얽힌, 그러나 이어지는 마음

아빠와 작은 아버지는 묘하게 닮았다.
조용한 말투,
선한 눈매,
낮은 웃음소리.

작은 아버지는 그 집의 장남이었지만,
우리 아빠에게는 ‘어린 동생’이었다.
참 이상한 관계였다.
형제인데,
서로에게 갖는 감정은
형처럼, 동생처럼,
그때그때 달랐다.

할머니는 늘 조용하셨다.
그 조용함 뒤엔
말 못 할 상처가 있는 듯했다.
아버지를 낳았던 그 시절,
장충동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던 젊은 여인이
겪었을 아픔은
함부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재가 후 다시 꾸린 가정.
성씨도, 이야기의 시작도 다른 아이들을
하나하나 품에 안고
자식으로 키우던 할머니는
그 마음속에 어떤 무게를 안고 계셨을까.

아빠는 종종 말하곤 했다.
“내 동생들,
사촌이 아니라 동생 같고,
동생 같지만 사촌 같기도 하고…”

아빠에게는
성은 다르지만 피를 나눈 동생들,
그리고 성은 같지만 어릴 적 한 지붕 밑에서 자라난 사촌들이 있었다.

누가 더 가족일까.
누가 더 정이 갈까.
아빠는 아마
그걸 따지는 순간마다
한 번씩 혼자 중얼거렸을 것이다.

“가족은…
피로만 되는 것도,
이름으로만 묶이는 것도 아니야.”

아빠는 성이 같은 사촌들에게도,
성이 다른 동생들에게도
똑같은 눈빛으로 말 걸고,
똑같은 손길로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나는 그게 아빠의 방식인 걸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했던 자리를
조금씩 메꿔주는 것.
꼬이고 얽혔지만,
그렇기에 더 강한 끈이 된 가족.

어느 가을 저녁,
작은 아버지와 아빠는
현미네 사랑채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 분위기 속에서
나는 ‘형제’라는 단어의 깊이를
처음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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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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