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그날의 목소리들

《궁전 너머 저쪽》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제29화. 그날의 목소리들

그날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오후였다.
카페에서 혼자
노트를 펼쳐 글을 쓰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햇빛이 천천히 기울고 있었다.

나는 문득
귀를 기울였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살짝 들린 것 같았다.

바로 옆자리도 아닌,
조금 떨어진 곳.
어린아이 같기도 했고,
익숙한 목소리 같기도 했다.


---

“미순아—!”

… 그건 분명히
미경 언니의 목소리였다.

놀라 돌아봤지만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없고,
아무 일도 없었지만
내 심장은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

며칠 뒤,
아침 산책을 하던 길.

산책로 끝자락에
늙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아래에
누군가 손수건 하나를 묶어두고 갔다.

작은 자수와
약간 바랜 색깔.

나는
거기에 손을 얹고 속삭였다.

“엄마…”

그날따라
바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같았다.

“미순아, 오늘도 잘 살고 있구나.”


---

그 이후로
나는 자주
이름 없는 목소리들을 느꼈다.

비 오는 날
우산 속에 퍼지는 아빠의 담배 냄새,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외할머니의 옛 노래,
누군가 등 뒤에서
등을 토닥이는 듯한 기척.

누구도 없지만
나는 알았다.

그날의 목소리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내 곁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걸.


---

슬픔은
마치 해변의 파도 같아서
밀려왔다 밀려가지만,

나는
그 목소리들 덕분에
조금씩
내 삶의 파도를 타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노트에 한 문장을 적었다.

> “사랑은
언제나 목소리로 남는다.”



어디선가
누군가 웃는 듯한 기척이
살짝 스쳤다.

나는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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