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흙먼지 속에서 바라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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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7년, 전라북도 전주의 외곽에 있는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뚜렷한 기억들이 있다.
마당 끝 우물에서 퍼 올린 물맛,
겨울이면 방문 틈으로 들어오던 바람,
여름이면 마당에 소복이 깔린 멍석 위에서
잠든 형제들의 숨소리.
아득하지만, 따뜻하고 슬픈 기억들.
우리 아버지는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계셨다.
어릴 적 앓았던 병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양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셔서 늘 방 안에 앉아 지내셨고,
지팡이를 짚고 몇 걸음 옮기시는 것도
힘겨운 일이었다.
아버지에게 있어 집 바깥은
늘 창문 너머 풍경으로만 존재했다.
어머니는 그 모든 무게를 짊어진 사람이었다.
아버지를 대신해 이른 새벽부터 논밭을 돌았고,
네 자식을 키우느라 숨 돌릴 틈도 없었다.
나는 그 집의 둘째이자 장남이었다.
아랫동생들보다 먼저 눈을 떴고,
먼저 어른이 되어야 했다.
무언가를 대단히 하고 싶다기보다는
빨리 돈을 벌고 싶었다.
그게 어머니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모두가 그렇듯 낯선 환경과 훈련이 힘들었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월급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처음 통장을 만들고 적은 금액이라도 어머니께 보낼 때
묘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생겼다.
“철수야, 네 편지 잘 받았다. 돈도 고맙다.
엄마는 그걸로 쌀 사고 연탄 조금 샀다.”
손 편지 속 삐뚤한 글씨.
나는 그걸 몇 번이고 꺼내 읽었다.
제대를 하자마자 나는 집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전주는 여전히 정겹고 익숙했지만,
내가 원하는 미래는 이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나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무언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하나로.
지인의 소개로 구로공단 근처 작은 철강 자재 업체에 들어갔다.
납품 보조로 들어가 무거운 쇠파이프와 자재를 나르며
몇 달간 일했다.
땀 흘린 만큼 일당을 받긴 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이 길로는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삶을 만들기 어렵다는 걸.
어느 날, 서울 신촌 쪽 대학가를 걷다
골목길에 펼쳐진 노점상들을 보게 되었다.
잡화, 양말, 모자, 옷가지들.
작은 가판대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그 풍경이 유난히 선명하게 남았다.
"저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나는 그날 마음을 굳혔다.
내 힘으로 내 자리를 만들어보자.
그다음 날부터 서울 종로, 대학로, 신촌을 돌아다니며
어디에 자리가 있는지 살폈다.
중고시장에 가서 옷 몇 벌을 사서
작은 비닐박스에 넣고 팔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람들이 눈길도 주지 않았다.
길거리에 박스를 깔고 앉아 있으니
경찰에게 쫓기고,
자리를 뺏기고,
비 오면 물건이 다 젖고.
그렇게 며칠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포기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루에 몇 천 원이 생겼고,
그걸로 컵라면과 김밥을 사 먹으면서도
나는 내 두 발로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 밑에서 시키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판단하고 움직이는 삶.
그게 비록 초라한 시작이라 해도
내게는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어머니께는 매달 일정한 돈을 보내드렸다.
얼마 안 됐지만
“내가 도와드릴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은 편했다.
동생들도 이제 제법 자라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그들이 등록금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니길 바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을 모르는 대신
멈추지 않는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낮에는 팔고, 밤에는 다음날 물건을 어떻게 준비할까
계산기 두드리고 고민하며 잠이 들었다.
이렇게, 내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전주 시골 마을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던 아이가
서울의 거리 한복판에서
“손님, 이거 진짜 싸요!”라고 외치며
자기 인생의 첫 장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 순간.
그건 작고 조용한 시작이었지만,
분명 내 인생에 가장 뜨거운 첫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