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가장 이야기

자서전 3화

제목: 「나만의 가게, 골목의 첫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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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앞 거리.

그곳은 젊음이 흘러넘치던 동네였다.

햇살 가득한 오후엔 또래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웃으며 걸었고,

저녁이면 분식집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장사꾼인 내게는 사람이 곧 희망이었고,

이대 앞은 그런 희망이 끊이지 않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을 붙잡기 위해

나는 더 치열하게 뛰어야 했다.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보따리를 싸 들고

누구보다 먼저 골목에 도착했다.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단속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팔기 위해.

액세서리, 꽃, 양말, 헤어핀…

돈이 된다고 생각되면 뭐든 팔았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은 늘 아슬아슬했고,

기댈 곳도 없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지치지 않았다.

“이 돈을 모아서, 언젠가는 내 가게 하나 갖자.”

그게 내 하루를 지탱한 유일한 약속이었다.


가게를 갖겠다는 마음은 허황된 꿈이 아니었다.

내 또래 대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거리를 지나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나도 저 사람들과 똑같은 나이인데,

누군가는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연애를 하고,

나는 짐을 지고 장사를 하지.’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누구도 내 길을 대신 걸어주지 않는다는 걸

나는 일찍 깨달았기에

질투보다 다짐이 더 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참 거리 장사를 마치고 남은 짐을 정리하던 늦은 저녁,

이대 뒷골목의 어느 낡은 건물 1층에서

‘임대’라는 작은 종이가 붙은 유리문을 봤다.

좁고 구석진 자리였지만

내게는 그곳이 ‘기회’처럼 보였다.

아주 작은 평수였고,

큰길이 아닌 골목 안쪽이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날 밤, 나는 몇 번이고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가

눈으로 살폈다.

이 거리에서 몇 년을 버텨온 감각으로

이 가게가 나에게 맞을 수 있을지를 판단했다.


며칠을 고민하고,

지인의 도움도 조금 빌리고,

그동안 모은 돈 대부분을 꺼냈다.

전세는커녕 권리금도 없는 작은 점포,

보증금 몇 백만 원에 월세 몇십만 원짜리

낡고 허름한 공간.

하지만 내게는

그 어떤 고급 상점보다 빛나는 ‘나만의 자리’였다.


계약을 마치고

처음 가게 문을 열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먼지를 쓸고, 닦고,

낡은 형광등을 갈고,

손수 판자 선반을 달았다.

작은 화분 하나 놓고,

무거운 짐 대신 마음을 채워갔다.

벽에 못을 박아 귀걸이와 머리핀을 걸고

꽃다발을 진열했다.

‘장사’가 아니라,

처음으로 ‘가게’를 연 느낌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와

물건을 둘러보고,

“이거 얼마예요?”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마치 어엿한 상인이 된 듯

어깨가 으쓱해졌다.

거리에서 손을 흔들고 외치며 팔던 시절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매출은 처음엔 크지 않았다.

그럴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나는 매일 가게 문을 열었고,

매일 진열을 새로 했고,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응대했다.

“여기 귀걸이 진짜 예쁘네요.”

“꽃다발 진짜 센스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하루의 피로를 잊었다.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이제는 단속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다.

누군가에게 쫓기지 않아도 되고,

물건을 이리저리 옮기며 도망치지 않아도 됐다.

내 물건을, 내 시간에, 내 방식대로 팔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내 또래의 학생들이 여전히

이대 앞 거리에서 웃고, 울고, 연애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그때,

나는 그들 옆 골목에서

조용히 내 삶을 설계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잡화점일지 몰라도

내게는

세상을 향한 내 첫 창문이자

작지만 단단한 출발점이었다.


가게 문을 닫고

혼자 불 꺼진 매장 안에서 앉아 있을 때면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그래, 여기까지 온 것도 나쁘지 않다.

조금만 더 힘내자.

여기서 멈추지 말고,

이 가게를 시작으로 더 성장해 보자.’


그때 나는 알았다.

젊음이란 건

뛰고, 흔들리고, 넘어지고,

그러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라는 걸.


그리고 이제,

나는 그 젊음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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