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제목: 「우연히 온 기회, 가방 하나가 바꾼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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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라는 게 참 그렇다.
가게에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날 하루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어떤 날은 말없이 그냥 지나가는 발소리만 가득하고,
어떤 날은 손님 둘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한다.
그날은 바로, 후자였다.
이대 앞 내 가게.
골목 안쪽이라 유동인구가 많진 않았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학생들이 들락거리는 곳이었다.
오후쯤 됐을까,
둘이서 까르르 웃으며 들어온 대학생 여자 손님 둘.
“사장님~ 여기 물건 진짜 예뻐요!”
“요즘 이런 게 대세예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
한 명이 슬쩍 자기 가방을 들이밀었다.
“근데 이건 사장님이 아직 안 갖고 계시죠?”
그러면서 자기 가방을 살짝 돌려 보여줬다.
나는 “어라?” 하고 잠시 말이 막혔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디자인.
색감도 좋고, 끈 디테일도 신기했다.
딱 봐도 싸구려는 아닌데,
뭔가 튀고 요즘 감성 같달까.
“이거 어디서 산 거야?”
나도 모르게 물었다.
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이거요? 일본에서 샀어요~
근데 이건 단가가 좀 높아요.
그래도 디자인 예쁘니까 사진 찍어서 만들어보셔요.”
그 말이 귀에 박혔다.
예쁘니까, 사진 찍어서 만들어보세요.
나는 그 말에
“정말… 그래도 돼?” 하고 물었다.
학생은 손사래를 치며
“사장님도 먹고 사셔야죠~ 그 정도는 괜찮아요!”
라고 웃었다.
그 말이 너무 따뜻하게 들려서
난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고맙다. 진짜 고맙다.”
그 순간, 가게에 있던 낡은 똑딱이 카메라를 꺼냈다.
그 옆에 붙어 있던 먼지를 쓱 닦고,
학생 가방을 여기저기 각도로 찍기 시작했다.
끈 디테일, 박음질, 안주머니까지.
“사장님 진지하셔~”
학생들이 웃었고,
나는 “이건 공부다”라고 했다.
진심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밤마다
그 가방 사진을 확대해서 보며
“이건 어디서 만들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이거,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가방 공장.
그게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시작했다.
서울 근교 가방 도매시장부터 뒤졌다.
을지로, 청평화, 동대문 가방골목까지
직접 걸어 다니며 사람들한테 물었다.
“이런 가방 어디서 만들어요?”
사진을 보여주면
어떤 사람은 “모른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저기 천동 쪽 가봐요” 하고 툭 던지듯 말했다.
그러다 정말,
어느 골목 끝에 있는 작은 공장 하나를 만났다.
미싱 소리가 계속 울리고,
50대 중반쯤 되는 사장님이
눈만 빼꼼 내다보는 조그마한 곳.
사진을 보여줬더니
사장님은 가만히 보다가
“이건 어렵진 않은데, 원단이 좀 까다로워요.”
라고 말했다.
나는 가방 하나를 만들기 위한
견적서라는 걸 처음 받아봤다.
패턴, 재단, 봉제, 라벨…
다 내겐 낯선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다.
내가 장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만든다’는 걸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그 학생 둘이 가게에 들어와
말을 건 게 없었으면,
나는 여전히 노점 시절의 감각으로
시장에서 떼다가 파는 일만 반복했을 거다.
하지만 이제는
‘내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감각을 얻게 된 거다.
첫 샘플을 받던 날,
나는 밤 11시에 그 공장 앞에 있었다.
조심스럽게 받아 든 가방 하나.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론 정말 울컥했다.
물건 하나가 누군가의 손에 들려지기까지
이렇게 많은 수고와 과정이 있다는 걸
그제야 뼈저리게 알게 됐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 가방이 내 장사의 다음 단계일지도 모른다는
설렘도 들었다.
학생 둘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가끔 그날을 떠올리며 웃는다.
장사는
팔고 끝나는 게 아니라,
들을수록, 느낄수록,
그 안에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 문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