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가장이야기

6하

제목: 「나만의 브랜드, 첫 시리즈의 탄생」


사람이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딱 두 갈래다.

포기하거나, 불을 지르거나.


나는 당연히 후자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용히 내 안에 불을 질렀다.


학생들 덕분에 찍어 만든 그 첫 가방이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딱히 광고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가게 앞을 지나가던 학생들이

“이거 뭐예요? 새로 들어온 거예요?”

하고 물어보는 일이 생긴 거다.


그날부터 나는 가게 구석에 박아뒀던

온갖 ‘잡동사니’들을 슬슬 치우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까지는,

내 매장이 마치 옛날 다방처럼

“뭐든 있다. 단, 정돈은 없다”였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든 걸 진열한다’는 건

단순히 물건을 놓는 게 아니더라.

마치 내 마음 한편을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쑥스럽고, 조심스럽고, 또 한편으론 기뻤다.


하지만 혼자 하기엔 역시 벅찼다.

그 무렵 나는 결심했다.


“이제, 사람을 들일 때다.”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여동생이었다.

전주에 살고 있던 누나와 여동생.

그중에도 ‘감각’ 하면 딱 떠오르는 건 막내 동생이었다.


나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가게 잠깐 도와줘.

사람들 반응 좀 봐봐.

그리고 너 갖고 싶은 가방 있으면 골라봐.”


동생은 “갑자기 왜?” 했지만,

나는 “그러니까 그냥 와”로 통일했다.


며칠 뒤, 동생은 정말 가게로 왔다.

눈은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가더니,

진열된 가방을 몇 개 만져보고,

“오빠 이건 끈이 너무 길어.”

“이건 색 조합이 좀 촌스러워.”

라며 사정없이 디스 하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누굴 닮아 저리 직설적이냐…’ 싶었지만,

그날 이후로 여동생은 내 ‘현장 리서처’가 됐다.


나는 물었다.

“그럼 어떤 가방이 좋겠냐?”

“너 대학 다닐 때 뭐 갖고 싶었어?”

“학생들이 자주 드는 스타일은 어떤 거야?”


동생은 진짜 고민하더니

“약간 미니멀한데 끈은 튼튼하고…

색은 무채색인데 지퍼만 튀는 거?”

라는 나름의 철학을 풀었다.


나는 그걸 노트에 적었다.

그리고 도안을 그려 다시 공장에 넘겼다.


같은 원단으로,

다른 디자인.

끈 모양, 주머니 위치, 내부 수납 칸까지 달리해서

총 3가지 버전을 샘플로 제작했다.


그리고 그 가방들에

작은 이름을 붙였다.

‘A1’, ‘A2’, ‘A3’

물론 처음엔 그냥 알파벳 놀이였지만

나중엔 ‘이게 시리즈 아닌가?’ 싶었다.


가방 세 개를 매장 전면에 걸었다.

딱 세 개.

그 외의 잡화는 모두 뒤로 뺐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지나가던 손님이

“이건 시리즈예요?” 하고 물어본 거다.

그 질문에 순간 망설이다

나는 “네, 한정 디자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입에 붙는 순간,

나는 내 가게를 ‘브랜드 샵’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물론, 안은 여전히 플라스틱 걸이와

철제 선반으로 뒤엉켜 있었지만 말이다.


여동생은

“오빠, 점점 이상한 상상하는 거 같아”

라며 웃었지만,

나는 진지했다.


그 시점부터

나는 ‘내 가게에서만 볼 수 있는 디자인’을

계속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제는 디자인이 조금씩 쌓였고,

내가 만든 가방만으로 매장 앞 벽이 꽉 찼다.


놀라운 건

하루에 손님이 한 명, 두 명

사진을 찍고 가더니

어느 날엔

“혹시 이거 인터넷으로도 팔아요?”

라는 질문이 나온 거다.


나는 아직 인터넷은 안 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자꾸 머리에 맴돌았다.


“내가 온라인도…?”


하지만 그건 조금 더 나중 이야기였다.

지금은

매장을 브랜드화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하루가 뿌듯했다.


단점이 있다면

매출은 폭발하지 않았다는 거.

가방 하나당 마진은 뻔했고

생산 단가도 있으니

막대한 수익이 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돈보다 더 중요한 걸 얻고 있었다.

‘내 이름을 걸 수 있는 물건’

그리고

‘나만의 방향’


그 두 개가 생기니까

버틸 이유가 분명해졌다.


어디선가, 누군가

내 가방을 메고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상상 하나면

나는 다음 날도

또 디자인 노트를 펼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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