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가장이야기

7화

제목: 신문한 줄, 줄 선 가게


그 시절엔 ‘온라인’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반짝이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건 일부 얼리어답터의 이야기였고,

대부분의 장사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직접 가격 깎아보며 사는 게 기본이었다.


나 역시도 그런 오프라인 감각에 익숙했다.

직접 얼굴 보고, 웃으며 팔고, 반응을 보며 방향을 잡는 게

훨씬 내 스타일에 맞았다.

그리고 그게 또 통했다.

어느 날, 그야말로 ‘빵’ 터졌다.


평소처럼 가게에서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낯선 사람들이 왔다.

카메라, 메모지, 명찰.

뭔가 익숙지 않은 분위기였다.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혹시 이 가방, 사장님이 직접 디자인하신 거예요?”


나는 약간 당황하며

“예, 뭐… 손으로 그려서 공장에서 만든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짧은 인터뷰처럼 보였던 방문이

며칠 뒤, 조선일보 한 면에 실렸다.

「골목길 감성 브랜드, 청춘을 담다」

라는 제목 아래,

내 가게 사진과

내 얼굴 반쪽이 살짝 나온 기사였다.


처음엔 몰랐다.

신문이 나간 날, 아침부터 이상하게 전화를 많이 받았다.

“형! 너 신문 나왔어. 얼굴은 안 나왔는데 가방이 나왔어!”

“우리 엄마가 너 가게 나왔다고 자랑하더라 ㅋㅋ”


나는 “설마~” 하다가

신문을 펼쳐본 순간,

그 낯익은 매장 입구 사진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진짜 나왔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다음 날 오후 2시.

매장이 평소보다 북적거리기 시작하더니

오후 5시가 되니까 텅 비었다.

가방이 아니라 매장이.


말 그대로 다 팔렸다.


내 손으로 디자인해서,

여동생과 골라 만들고,

밤잠 줄여가며 붙인 그 태그 달린 가방들이

하나도 안 남았다.


황당했다.

기쁜데, 뭔가 황당한 기분이랄까.

마치 내가 아닌 누가

나 대신 뭔가를 이뤄낸 것처럼 멍했다.


그날 이후로는

매일 아침 9시 출근,

오전 10시 공장과 통화,

점심은 삼각김밥,

오후엔 새 디자인 도면 그리기,

저녁 5시면 매대는 비워지고

밤 9시에야 퇴근.

일상이 ‘기계’처럼 돌아갔다.


기분은?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하지만… 피곤했다.

기분 좋게 피곤했다.


문제는 또 터졌다.

너무 잘 팔리니까,

주변 가게에서 똑같은 디자인을 베끼기 시작한 거다.

심지어 어떤 가게는

내 가방에 있던 라벨을 떼다가

자기네 제품에 붙이기도 했다.


처음엔 분통이 터졌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이 정도면...

내 디자인이 '먹힌다'는 증거지.”


그게 마냥 기분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이때쯤부터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저기 이대 앞에 있는 OO 가게 사장님”

“그 가방 만든 분”

심지어는 “디자이너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디자이너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었지만

그 말이 들릴 때마다

괜히 허리를 펴게 됐다.

슬쩍 미소도 지어지고 말이다.


이제부터는

그저 ‘팔리는 것’보다

‘나를 보여주는 것’

‘지속 가능한 것’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디자인 보호’에 대해 알아보고,

‘브랜드 이름 등록’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바쁘고,

여전히 혼란스럽고,

여전히 매대는 매일 5시면 텅 비었지만—

내 안에는

어렴풋한 자부심이 자라고 있었다.


그날의 신문 한 장이

단지 매장을 유명하게 만든 게 아니었다.

그건 내 인생에

“너, 잘하고 있어”

라는 도장을 찍어준 첫 번째 공식 문서였다.


그리고 그 하루가,

지금의 나를 만든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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