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성공의 속도, 그리고 명동으로의 진출
솔직히 말하면,
그 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렀고,
어제랑 오늘의 차이는 없는데
한 달, 두 달 지나고 보니
가게는 이미 '입소문 명소'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그냥…
“잘 되면 좋겠다”
정도의 소망이었다.
근데 정말 잘 되기 시작하니까—
‘욕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매일 찾아왔고,
신문 기사 한 줄의 영향력은
1년이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조선일보 보고 왔어요.”
“여기 가방 직접 만든다며요?”
“그때 그 신문에 나왔던 곳 맞죠?”
처음엔 신기했고,
그다음엔 감사했고,
그러다 점점 부담도 생겼다.
늘 새롭고, 늘 예쁘고, 늘 남다른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물건은 계속 만들었고
공장도 계약을 늘렸다.
기존 매장은 좁았기에
근처 가게 하나를 인수해 2호점처럼 쓰기 시작했다.
제품 수가 많아질수록
매장의 콘셉트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에
한쪽은 베이식 라인,
한쪽은 시즌 한정 디자인으로 나눴다.
“한정된 물량으로 가격을 올리는 전략”—
내가 언제 그런 걸 알았겠는가.
그저, 너무 팔려서
공장이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자연스럽게 가격이 조정된 거였다.
그게 오히려
“희소성”이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들한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간 셈이다.
하루는 어떤 고객이 와서 말했다.
“사장님, 저 이거 못 사면 후회할 거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 사셔야죠. 제가 공장 사람은 설득해도, 시간은 못 돌리니까요.”
그땐 나도 꽤 말이 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아마 잠을 못 자서 정신이 몽롱했던 탓도 있다.)
이제 사람들은 내 매장을 ‘브랜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잡화점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과 감각이 담긴 공간’으로 인식한 거다.
그 순간, 나 스스로도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는 더 넓은 곳으로 나가야 할 때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걸, 스스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결정했다.
명동 진출.
그 시절 명동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쇼핑의 중심이었다.
외국인 관광객부터 서울 토박이들까지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거리’였다.
임대료? 당연히 높았다.
자리 경쟁? 험악했다.
하지만 기회는 결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오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붙잡은 사람’에게 오는 거다.
나는 기존 매장을 믿고,
명동 매장을 ‘도전의 무대’로 삼았다.
그 무렵,
인생에도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바로 결혼.
장사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사람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고맙게도 인연은 그렇게 바쁜 삶 한복판에서
살며시 찾아왔다.
장사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여자였고,
새벽까지 디자인 그리는 걸 옆에서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함께 가게를 해도 되겠다.”
그게 아니라
“이 사람이라면… 함께 인생을 해도 되겠다.”
싶었다.
나는 결혼을 결정했고,
사업도 동시에 확장하고 있었고,
말하자면 그 해의 나는
“뭘 해도 될 것 같은 기세”였다.
지금 돌아보면
무모함과 용기 사이에서
나는 늘 용기의 편을 들어왔던 것 같다.
욕심이 아니었다.
가능성이었다.
내가 만든 가방 하나로,
신문에 나고,
사람들이 줄을 서고,
가게가 늘어나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이 모든 게
하나의 ‘작은 시도’에서 시작됐다는 걸
나는 아직도 잊지 않는다.
그 한 발짝이
어쩌면 내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놨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