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복층 매장과 복잡한 마음
명동에 매장을 낼 때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메인 거리는 아니었지만,
눈에 확 띄는 복층 매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층은 널찍하게 뚫려 있었고,
2층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구조.
햇살도 잘 들었고, 벽면은 내가 그동안 꿈꿨던 스타일 그대로였다.
그야말로 '쇼룸'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딱 좋은 공간이었다.
“여기야.”
첫 느낌이 그랬다.
그리고 그 촉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오픈 첫날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명동은 정말 바글바글했다.
한국 손님, 일본 관광객, 대만에서 온 대학생들,
심지어는 영어도 잘 안 통하는 남미 손님들까지
각양각색의 얼굴들이 매장 안을 꽉 채웠다.
문제는,
내가 그런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거다.
기존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들로는 턱도 없었다.
복층 매장에 사람이 몰리자,
나는 직원 수를 배로 늘려야 했다.
매장에 진열할 상품도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준비해야 했고,
그 많은 제품을 관리하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직원들이 “사장님, 여기 코드가 안 맞아요!”
“사장님, 고객님이 일본어로 뭐라 하시는데요?”
“사장님, 계산대 고장 났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불러댔다.
그럴 때면 난 속으로 말했다.
"이제 진짜 사장이 된 거 같구먼…"
외롭고 책임이 컸다.
사실 그전까진 ‘가게 주인’이 아니라
그냥 ‘장사꾼’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근데 이젠 달랐다.
계약서, 직원 관리, 외국어 응대, 고객 불만 처리, 온라인 문의까지
진짜 ‘운영’이 시작된 거였다.
인테리어는 정말 신경 썼다.
1층에는 내가 직접 디자인한 시즌 신상들을
마네킹과 함께 쇼윈도에 전시했고,
2층은 앉아서 편히 둘러볼 수 있는 ‘가방 도서관’을 꾸몄다.
처음엔 누가 2층까지 올라오겠냐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고객들이
계단을 타고 성실히 올라와줬다.
그리고 대부분 이렇게 말했다.
“와, 여긴 좀 다른데요?”
“사장님 센스가 보이네요!”
“사진 찍어도 돼요. 매장 너무 센스 있어요?”
그 말 한마디에… 하루 피로가 싹 풀렸다.
(물론 2층 화장실에서 몰래 다리 주무르긴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살짝 번아웃, 아주 살짝 들뜬상태"**였던 것 같다.
매출은 잘 나왔다.
5시가 되면 인기 디자인은 이미 품절.
외국 손님들은 사진을 찍어서
다음 날 단체로 찾아와 10개, 20개씩 사갔다.
일본 고객은 “이거 한국 연예인도 쓰는 거예요?” 물었고,
나는 “아직은 아니지만 곧 쓸지도 몰라요” 하며 웃었다.
그때 깨달았다.
장사는 제품만이 아니라
분위기와 이야기를 파는 일이라는 걸.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직원은 열 명이 넘었고,
급여일이면 통장 잔고가 쑥 빠졌다.
공장엔 매주 단가 협의를 했고,
명동 임대료는 생각보다 더 살벌했다.
매장 안이 북적일수록
나는 내 마음속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렇게 바빠도 괜찮은 걸까?”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일까?”
하지만 그 물음은
손님이 또 밀려들면
잠깐 접어두게 되었다.
밤 11시가 넘은 뒤,
새시 유리 너머로 텅 빈 거리를 보며
계단 아래서 쭈그려 앉아 샌드위치를 씹던 나를 떠올린다.
그땐
이 정도만 돼도 성공이라고 여겼다.
근데 막상 와보니…
또 다른 ‘산’이 눈앞에 있었던 거다.
그렇다.
성공이란 건
언제나 다음 계단 위에서 손짓하는 놈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