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손, 맑은 마음》

3화

3화. 자전거, 라디오, 그리고 서울


중학교 시절, 나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왕복 10리, 비포장길.

비라도 오는 날이면 바퀴에 진흙이 엉겨 붙고,

겨울이면 균열 난 논둑길 위로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 자전거는 아버지가 어렵게 구해주신 것이었다.

누군가 물려준 낡은 것을 고치고 또 고쳐

내 다리에 맞춰주셨다.


아버지는 학벌이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버지는 늘 내게

‘공부는 해라’ 하셨다.

일손 부족한 집이었지만,

나는 논밭보단 학교로 가길 바랐던 것 같다.

아버지의 그런 눈빛을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느꼈다.

뒤에 흙이 튀고, 입김이 흩어져도

나는 마치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을 먹고 라디오 앞에 앉았다.

아궁이에 불이 꺼져가는 소리를 들으며

라디오 속 서울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선 누군가 택시를 탔고,

다른 이는 백화점에 갔다고 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다.


나는 아직 택시를 본 적도,

백화점이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은

마치 다른 별의 사람처럼 반짝였다.

그 반짝임은 내 마음 깊숙이 자리를 잡았고,

**“나도 언젠가는, 그 도시라는 데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 되어 자랐다.


그 무렵, 책상 하나 없이도 공부를 했다.

부엌에서 쌀을 퍼내고 남은 자리에 앉아

국어책을 펴놓고 단어를 외웠다.

형광등 대신 호롱불,

책받침 대신 반찬 접시.

그러다 잠이 들면,

아버지는 내 이마 위에 이불을 덮어주셨다.


나는 공부가 늘 좋았던 건 아니었다.

사실 어떤 날은 자전거 바퀴에 발을 끼어 울었고,

어떤 날은 도시 아이들처럼 말끔한 교복이 부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서울’이라는 말 하나로 버텼다.

멀리서 들려오던 그 말,

그곳에 가면 무엇이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는 결국 녹이 슬어 고장이 났고,

라디오는 점점 주파수를 잃어 갔다.

하지만 내 마음 한구석에선

아버지의 소망과,

라디오 속 이야기와,

그 어린 날의 꿈이

지금도 조용히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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