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묻은 손, 맑은 마음》

5화

5화. 사장님을 아버지라 여겼다

서울살이에 조금 익숙해질 무렵,
내가 일하던 공장에선
하나둘 내 몫이 늘어났다.

기계 닦는 일뿐만 아니라,
납품 스케줄 확인, 거래처 서류 정리,
때로는 사장님을 따라 관공서에 가는 일까지 맡게 됐다.
다른 직원들이 꺼리는 일도
나는 고개 숙이고 “예” 하고 맡았다.

사장님은 말이 많지 않은 분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특별히 신경을 써주셨다.
관공서 갈 일이 있으면 꼭 내게 함께 가자 하셨고,
장부 정리를 하면서도
“이건 그냥 숫자가 아니야.
이 숫자 하나에 사람이 있고, 신뢰가 있어.”
하며 하나씩 알려주셨다.

나는 그분을
‘사장님’이 아니라 ‘서울의 아버지’처럼 따랐다.
어릴 적 아버지는 땀 흘리며 논에서 일하셨고,
이 사장님은 서류를 쥔 손으로 회사를 꾸려가고 있었다.
땀의 모양은 달랐지만
책임의 무게는 같아 보였다.

때로는 거래처 사장에게서
괜한 꾸중을 듣기도 했다.
일이 늦었다, 포장 상태가 안 좋다, 전화가 안 받혔다…
그럴 때면 속상했지만
사장님은 내 등을 툭 치며 말했다.
“네가 잘하려고 했다는 거,
그거면 됐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고무줄처럼 마음을 펴고
다음 날 더 일찍 출근했다.
청소부터 서류 정리, 잔업까지.
일을 배우는 게 아니라, ‘사람 노릇’을 배운 느낌이었다.

어느 날은 관공서에 들렀다 나오며
사장님이 불쑥 물었다.
“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사장님처럼… 신뢰 받는 사람이요.”
그 말에 사장님은 한참을 웃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그거, 쉽진 않아.
하지만 네 성실함이면 할 수 있을 거다" 하셨다.

나는 그 말이 고마웠다.
누군가에게 ‘될 수 있다’는 말을 듣는 일,
그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서울은 여전히 낯선 도시였지만
그 공장 안에서,
나는 어릴 적 집 마당처럼
내 자리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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