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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운데 토막을 원했을 뿐이고》
우리 가족의 저녁 식사는 늘 시끌벅적했다.
한창 자라는 아이 넷에, 부모님까지.
밥상 두 개를 안방에 붙여놓고
각자 쪼그리고 앉아 먹는 게 우리 집 풍경이었다.
식사 개시는 늘 아빠가 하셨다.
“자, 묵자—” 숟가락 딱 들면
그제야 우린 우르르 퍼먹기 시작했다.
근데 이상하게…
늘 아빠 밥상 쪽 반찬이 예뻤다.
같은 나물도, 우리 밥상에 있는 건
꼬들꼬들한 게 아니라 기절 직전.
된장국도 아빠 밥상 쪽은 두부가 살아 있고,
우리 쪽은 두부가 미끄러졌는지 안 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생선.
생선이 올라오는 날이면 운명이 갈린다.
아빠 밥상엔 윤기 좔좔 나는 가운데 토막.
우리 밥상엔 눈 똘망한 생선머리와 뼈만 남은 꼬리.
나는 그게 너무 억울했다.
“왜 가운데 토막은 맨날 저쪽이야!! 나도 아빠 밥상에 앉을래!!”
혼자 쿵쾅거리며 밥상을 기웃거리면,
엄마는 늘 같은 멘트로 정리하셨다.
) “넌 아직 가운데 토막 소화도 못 시켜~”
그 말 듣고 울지는 않았다.
다만,
생선 머리의 눈을 똑바로 보며 속으로 말했다.
> “언젠간 내가 널 가운데서 먹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