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품은 집》

3

3화. 별을 따라간 형

우리 집엔 언제나 ‘빛나는 자리’가 있었다.
그 자리는 언제나 형의 것이었다.
형은 어릴 때부터 뭐든 잘했다.
글씨도 단정했고, 목소리도 또렷했다.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면 늘 형이 먼저 손을 들었고, 동네 할머니들도 형만 보면 “저 집 기둥이다” 하셨다.
정말 그랬다. 형은 우리 집의 기둥 같은 존재였다.
아버지는 형을 보면 어깨를 펴셨고, 어머니는 형이 내는 발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이셨다.

형은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항상 반장을 맡았고, 상장을 품에 안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온 집안이 환해졌다.
나는 그 옆에서 늘 마당을 쓸거나, 연탄재를 버리거나, 산에 다녀온 신발을 털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형의 흰 와이셔츠는 내 손에 늘 먼 듯 느껴졌다.

형은 서울로 갔다.
작은아버님 댁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날 아버지는 형을 버스에 태우고 돌아와서 말이 없으셨다.
방 한구석에 형이 벗어놓고 간 슬리퍼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어머니는 그것을 며칠간 치우지 않았다.
나와 여동생만 집에 남아 조용히 마당에서 놀던 그 며칠이 아직도 기억난다.
형이 없는 집은 조금 더 무거웠고, 조금 더 고요했다.

형은 대학에 합격했고, 졸업 후엔 미국 회사에 스카우트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날,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돌리셨다.
“우리 큰아들이 드디어…”
말끝을 흐리시며, 괜히 지게를 다시 지고 산길을 걸어가셨다.
그날 나는 혼자 부엌 뒤에서 감자를 깎고 있었다.
문득, 형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곳은 어떤 곳일까,
나는 그곳에 한 번이라도 가보게 될까, 생각했다.

형은 가끔 전화를 했다.
미국에서의 삶, 회사 이야기, 처음 먹은 피자 맛, 눈 내리는 날 아침의 기분 같은 걸 어머니에게 전했다.
어머니는 늘 전화를 받고 나서 말이 적어졌다.
“형이 잘 있대요?”
“응, 잘 있대.”
그럼 끝이었다.

설날이나 추석에 형이 오면, 온 마을이 들썩였다.
형은 낯선 향수 냄새를 풍기며 들어왔고, 짐에서 하나 둘 선물을 꺼냈다.
나에게는 늘 기능 좋은 손목시계나, 영어로 적힌 노트가 돌아왔다.
나는 그것들을 보며, 형이 사는 세상이 얼마나 멀고 단단한지 느꼈다.
형은 나에게 ‘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닿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래도 형은 따뜻했다.
내가 산에서 캔 버섯을 내밀면,
“이건 이름이 뭐야?” 하고 물었고,
어머니에게는
“동생, 손이 다르다. 이건 그냥 잡은 게 아니야.”
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나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형이 안다는 것, 그게 나를 버티게 했다.

지금도 형은 미국에 있다.
이따금 사진을 보내온다.
정원에 핀 꽃, 하늘 아래 선 손주들, 그리고 식탁에 놓인 낯선 음식들.
나는 그 사진들을 보고 웃는다.
가끔은,
형이 이 마을의 냇가에서 돌을 던지던 그 손으로
지금은 타국의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고 있다고 상상한다.

나는 여전히 이 산 아래 산다.
형이 밝히던 그 길을 나는 다른 방식으로 지키고 있다.
형은 별을 따라 나아갔고,
나는 흙을 따라 머물렀다.

그러나 마음만은 서로 향해 있다.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
그 길을 내가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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