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품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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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품은 집》

4화. 흙을 넘은 형, 마음은 남은 사람

작은형은 웃음이 많았다.
형이 웃으면 마당의 닭까지 따라 웃는 듯했으니 말 다했다.
어릴 적부터 형은 개구쟁이였다.
길가의 참나무에 올라가 뻗은 가지를 타고 건너가기도 하고, 겨울엔 얼어붙은 논에서 썰매를 만들어 타곤 했다.
그때 나는 늘 그 옆에 붙어 다녔다.
작은형은 나에게 형이자 친구였다.
무거운 짐도, 억울한 일도, 숨기고 싶은 마음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

아버지의 농사일을 가장 먼저 따라나선 것도 작은형이었다.
“아버지, 낫은 내가 들게요.”
그 한마디에 아버지 눈꼬리가 내려앉았다.
그 옆에서 나도 호미를 들었다.
형은 나를 뒤돌아보며 웃었고, 그 웃음은 “같이 하자”라는 말보다 더 큰 힘이 있었다.

형은 손재주도 좋고, 사람을 잘 다뤘다.
마을 어르신들 사이에선 형이 어릴 때부터 “기특한 놈” 소리를 들었다.
시장에 가면 물건 값을 깎는 대신, 상인들과 먼저 농담을 건넸다.
그렇게 사람과 눈을 맞추는 법을, 형은 몸으로 익혔다.

하지만 그 형도, 가끔은 조용히 말했다.
“정우야, 우린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았다.
형은 우리 집이 흙냄새에 묻혀 살아가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논두렁에 발이 빠지던 날,
형은 진흙을 털며
“이 흙도 지겹다. 나는 이 마을에만 머물 순 없을 것 같아.”
하고 중얼댔다.

그러면서도, 형은 끝까지 농사일을 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한 해 동안은 집에 남아 아버지를 도왔다.
나는 형을 따라 더 깊은 산에 들어가기도 했고, 볕이 뜨거운 밭에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형이 조용히 말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 해. 청주로 갈 거야.”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마치 내가 혼자 남는다는 뜻 같았다.
하지만 형은 손을 내밀었다.
“네가 있어야 우리 집이 지켜지지. 난 밖에서 우리 집 이름 지킬게.”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하게 들렸다.
형은 우리 가족이 가난하다고 느꼈지만, 가족 자체를 벗어나려 한 건 아니었다.
형은 단지, 다른 방식으로 버티고 싶었던 거다.

형은 결국 합격했다.
청주시청에 들어갔고, 정장을 입은 사진을 한 장 보내왔다.
하얀 셔츠에 검정 넥타이, 그리고 딱딱한 표정.
익숙하지 않던 형의 그 모습은 조금 낯설었지만, 어쩐지 ‘자기 자리를 찾은 얼굴’ 같았다.
아버지는 그 사진을 소중하게 찬장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 사진 아래, 형이 쓰던 낫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 조합이 묘하게 좋았다.
흙을 버린 것이 아니라, 흙에서 일어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도 형은 종종 전화한다.
“산에 무슨 꽃 피었어?”
“올해 버섯 많이 나냐?”
그런 질문들.
형은 여전히 이곳을 궁금해한다.
멀리 있지만, 마음은 아직 우리 마을의 계절을 따라 흐르고 있는 것이다.

형은 한 번씩 찾아온다.
서울 말이 조금 섞인 목소리, 회사 일에 찌든 얼굴.
하지만 마당에 발을 딛자마자 다시 예전의 형이 된다.
“야, 그 돌은 아직 있네?”
그러며 나와 웃는다.

작은형은 농촌을 떠났지만, 농촌을 잊진 않았다.
형이 떠난 자리에 나는 남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내가 형에게 주는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형은 세상으로 나아간 뿌리였고,
나는 이곳에 남은 줄기였다.
그 줄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흙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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