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품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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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품은 집》

2화. 배움을 믿은 누나


누나는 항상 뭔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작은 들쭉 열매든, 갓 삶아낸 고구마든, 혹은 읍내 서점에서 사 온 연필 한 자루든.

어느 날은 마을 아이들에게 개피떡을 나눠주고, 또 어느 날은 선생님께 받은 상장을 들고 왔다.

큰누나는 뭐든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었다.

어려운 살림에도, 마을에서 누가 장에 못 간다 하면 손수 심부름을 나섰고, 어머니가 허리를 펴기도 전에 벌써 물동이를 이고 산길을 내려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나는 어릴 적부터 ‘어른’이었다.


나는 막내였고, 누나에게 잔소리를 제일 많이 들은 사람이었다.

“공부 좀 해, 정우야. 사람은 배워야 돼. 산만 타서는 안 되는 거야.”

그 말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새벽에 아버지를 따라 버섯 따러 가는 걸 알면서도, 누나는 밤마다 내 책보를 살펴 책이 제대로 펴졌는지 확인하고, 연필을 깎아두었다.

나는 산이 더 좋았고, 누나는 글자가 더 중요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자랐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서로를 닮아갔다.


누나는 형처럼 읍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에서 상장을 곧잘 타왔다.

장학금도 받았고, 동네에서는 “그 집 큰딸 공부 잘해” 소문이 자자했다.

누나는 그런 말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가끔은 나를 교실에 데려가 앉히곤 했다.

“정우야, 책이 세상을 넓혀줘.”

그 말이 참 어색했지만, 누나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녀는 책에서 세상을 보고 있었고, 나는 산에서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어느 겨울, 형이 도시로 진학하고 누나도 졸업을 앞둔 시절이었다.

아버지의 허리가 더 굽어졌고, 어머니는 자주 기침을 했다.

그 무렵 나는 국민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집에 남기로 굳어가고 있었다.

누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누나의 말은 점점 간절해졌다.

“네가 공부를 포기하면, 엄마 아빠의 고생이 끝이 안 나. 누가 이겨낼 줄 알아?”

누나는 내가 부모님의 고달픔을 대신 짊어지려 한다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그래서 더 안쓰러웠을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산에 갔다.

아버지의 짐을 덜고 싶었다.


한 번은 봄날 오후였다.

누나가 읍내 장에서 돌아오며 내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얇은 책 한 권.

“이건 그림도 많고, 글도 쉽다. 이건 네가 좋아할 거야.”

그 책은 ‘산에서 만난 식물’이라는 제목이었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책이 재밌다고 느꼈다.

누나는 아마 그걸 보고 웃었을 것이다.

나를 몰랐지만, 이해하려 했던 사람.

그게 누나다.


누나는 서울로 시집을 갔다.

결혼식 날, 마당에 잔치상이 차려지고, 어머니는 고개를 떨군 채 웃었다.

나는 그날, 누나에게 말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누나가 주던 책, 아직 갖고 있어.”

그 말 한마디가 목에 걸렸다.

누나는 멀리 떠났지만, 명절이면 돌아왔다.

지금도 마을에 오면 아이들에게 귤을 나눠주고, 어르신들께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정우는 잘 있지?”

그 질문은 언제나 누나가 먼저 한다.


이따금 누나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한다.

“너는, 참 변하지 않아.”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누나가 다르게 볼 줄 몰라서 그래.

나는 누나 덕에, 책 한 권을 열었고, 그 안에서 산을 다시 보게 됐어.”


지금도 그 책은 내 서랍 속에 있다.

노란 바탕에 작은 버섯 그림이 그려진 표지.

낡고 해졌지만, 누나의 마음이 그 안에 있다.

누나의 말처럼, 사람은 배워야 한다.

나는 누나를 통해 ‘마음’을 배우고,

산을 통해 ‘삶’을 배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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