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품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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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나는 지금도 그 산에 산다


괴산 연풍면, 사방이 산이다.

산이 둘러싼 마을 가운데 내가 태어난 집이 있다.

2남 3녀 중 네째로 태어났고, 나는 그 집의 막내아들이었다.

위로는 큰누나, 작은누나, 형, 그리고 여동생.

늘 북적였다.

아궁이에선 하루 세 번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당에서는 닭이 쪼르르 모래목욕을 하고, 누나들이 들고 나는 부엌에서는 된장국 냄새가 진하게 피어났다.

우리 집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그랬다. 서른 가구 남짓, 모두 친척처럼 지냈고 산길 따라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산은 나의 놀이터였고, 교실이었다.

학교 가는 길도 산을 넘었고, 놀 때도 산으로 갔다. 형과 누나들을 따라 국민학교에 다녔고, 중학교에 가면서는 더 깊은 산을 넘어야 했다.

학교보다 산이 더 좋았다.

국민학교 5학년쯤이었나, 공부가 점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은 늘 창밖 나뭇가지에 가 있었고, 손은 책상보단 낫을 더 익숙해했다. 새벽마다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올라가 버섯을 땄다.

촉촉한 흙 내음, 이끼 낀 바위, 새벽안갯속 아버지의 뒷모습.

그건 내가 어린 마음에도 놓치고 싶지 않은 무엇이었다.


형은 공부를 참 잘했다. 선생님이 되겠다고 늘 말했다.

나는 몰래 형의 책장을 들춰보다가, 오래 펼쳐진 지리책에서 산맥 그림만 따라 그렸던 기억이 있다. 그게 나한테는 진짜 공부였다.

어머니는 말이 많지 않은 분이셨지만, 늘 부지런하셨다.

그 시절의 엄마는 늘 두루마기 소매에 흙이 묻어 있었고, 밭에서 돌아와도 쉴 틈 없이 물을 길어다 부엌의 솥에 올리셨다.

누나들은 나보다 일찍 철들었고, 여동생은 나보다 씩씩했다.

나는 그렇게 뒤따르며 눈치를 보고, 일손을 거들고, 그러다 산에 오르면 세상이 다시 넓어졌다.


고등학교는 못 갔다.

중학교 졸업 후, 나는 마을에 남았다.

남들이 외지로 나갈 때, 나는 마을로 다시 들어왔다.

처음엔 나도 떠나야 하는 줄 알았다. 형은 대전으로, 누나는 서울로 갔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 산을 떠나기가 싫었다.

그저 아버지가 계신 이 산과, 어머니의 밭고랑과, 내가 마신 샘물과, 나무 아래 숨은 다람쥐와, 봄이면 우는 소쩍새가 너무 익숙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땐 아버지가 병을 앓으셨다.

나는 더 이상 산을 오를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산에 들었다.

도라지 캐고, 능이 말리고, 산초 따고, 땔감을 모았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 어느덧 삼십 년이 넘었다.

결혼도 마을 처녀와 했다. 지금은 손주들이 뛰노는 집이 되었고,

나는 여전히 새벽마다 산에 오른다.

요즘은 나물보다 길을 다듬는다.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이제는 '귀촌'이니, '산촌 체험'이니 하며 외지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온다.

나는 그들에게 산을 소개하고, 오솔길을 알려주고, 때로는 버섯도 보여준다.


그렇게 여든 가까운 어르신들을 지나, 지금은 내가 마을의 중간쯤이다.

형은 서울에서 정년퇴직 후 다시 돌아올까 고민한다지만, 나는 그저 여기가 좋다.

누나들이 명절에 오면 "넌 참 변함이 없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변했다.

아버지처럼 걸음이 느려졌고, 어머니처럼 새벽 찬물에 손을 담글 줄 알게 되었으며,

내가 한때 떠나고 싶지 않았던 이 산의 품에서,

이젠 사람들에게 ‘산을 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가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묻는다.

“여기서 뭐 하며 사세요?”

나는 말한다.

“산에서 삽니다. 그냥, 산을 살고 있어요.”


지금도 나는 그 산에 산다.

그 시절 나와 눈을 맞추던 바위, 발에 익은 돌계단, 아버지와 앉았던 평상 자리,

그 자리에 서면,

시간이 흘러도

나는 그대로다.

그 산도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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