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첫 농사, 나를 일구다》
3화. 4월, 흙 속에 씨를 묻다
4월은,
햇볕보다 내 마음이 먼저 달아오른 달이었다.
꽃샘추위는 아직도 새벽마다 얼음장 같은 기운을 남겼지만,
나는 벌써 맘이 바빠져 있었다.
겨울 내내 준비한 것들을
이제 땅에 풀어놓아야 했다.
그 밭은,
아버지가 사과나무를 베어낸 뒤
3년 가까이 풀만 키우던 곳이었다.
묘하게 울퉁불퉁하고
눈으로 보기에도 약간 기울어진 땅.
그런 땅을 나는 한 줄 한 줄 맞춰보며
수박과 호박, 고구마와 옥수수 자리까지
‘마음속 지도’처럼 그려나갔다.
“퇴비 많이 넣어야 해.
지금부터 넣고 갈아엎어. 그래야 5월에 심을 수 있어.”
동네 선배님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나는 퇴비를 사다가 트럭으로 날랐다.
짐을 부리고,
괭이로 뒤엎고,
하루에 몇 평씩만 정복했다.
600평은 혼자 하기엔 결코 작지 않았다.
그중 4할은 두 그루 나무를 심었다.
복숭아 한 그루,
자두 한 그루.
심고 나니,
그 나무가 아니라 내가 그 밭에 뿌리내리는 기분이었다.
또 3할은
더덕 씨앗을 뿌렸다.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산더덕보다 밭더덕은 정성이 더 들어간단다.
뿌리도 깊고, 싹도 느리다.
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 먹고
“향이 진하다”라고 말해줄 그날을 상상하며
작은 손톱만 한 씨를
고요히 덮었다.
나머지 3할.
그건 ‘기대’라는 이름의 땅이었다.
고구마, 수박, 호박, 옥수수.
뭘 심어도 실패가 없다는
국민 작물들이라지만
나는 한 가지도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줄 간격은 몇 cm인지,
심는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물은 어느 시기에 줘야 하는지.
그 모든 게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유튜브는
정답처럼 이야기하지만
내 밭은 그 정답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퇴비를 잘 섞었는데도
어느 구역은 너무 질고
어느 구역은 바짝 말라 있었다.
밭은 말이 없었지만
그만큼 느리게, 천천히,
내게 ‘알아가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혼자서 밭에 나가
괭이를 들고
이마에 땀이 맺히면
주위가 고요해졌다.
새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그 공간에서
나는 ‘딱 나만’ 존재했다.
그게 이상하게 좋았다.
괴산 시내에서
남편 눈치 보며
사무실과 마트 사이를 오가던 내 삶은
늘 무언가의 틀 안에 있었는데
이 밭에선
오직 내 선택과 내 손길만으로 움직였다.
한 번은
호박 줄을 맞춰 심다가
무릎이 쑤셔서 주저앉았다.
바람이 불었다.
멀리서 아버지의 웃음 같기도 한 냄새가
흙 위로 흘렀다.
"엄마, 뭐 하세요?"
주말에 딸이 들렀다.
내 손에 묻은 흙을 보고
조금 놀란 듯 웃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들고,
조금 멀리 자두나무를 가리켰다.
"엄마가 심은 나무야."
“와… 멋있다.”
그 한마디에
내 손끝이 따뜻해졌다.
나는 진심으로
‘밭이 사람을 바꾸는구나’
생각했다.
그해 4월,
나는 밭에 씨를 뿌렸고
내 마음도 함께 묻었다.
올해가 잘 될지 아닐지는 몰랐지만
나는 이미 시작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