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긴 게 제일 웃겨 》

20화

《그냥 웃긴 게 제일 웃겨 20화》

“추석엔 노래자랑이 국룰이었다”

시골의 명절은
당일 하루만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추석 3일 전부터 북적북적.
명절 후 3일 동안도 명절 기운이 이어졌다.

마을회관은 마치 작은 전쟁터.
부침개 부치고, 전 부치고,
뒤에서는 시래기 말리고,
앞에서는 벌써 막걸리 오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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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나간 친척들은
이미 추석 이틀 전부터 내려오셨다.
누군가는 버스 타고,
누군가는 트럭 짐칸에 실려서.

도착하자마자 들리는 인사:

> “어이구~ 어릴 때보다 살쪘네~”
“고등학생이여? 거짓말하지 말아~”
“어멋, 남자친구 있니~?”



그 말 듣자마자
전 부치던 어른들 폭소.
기름 냄새보다 수다가 더 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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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짜 명절의 클라이맥스는,
추석 저녁 노래자랑.

밤이 되면 마을회관 앞에
천막 하나 치고, 전기 코드 쭉 뽑아와 마이크 연결.

조명 대신 마을 할아버지 손전등.
심사위원은 이장님, 반장님, 면장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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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지.
온 동네는 물론,
이웃 마을 사람까지 몰려와 구경.

첫 무대는 항상
고등학생 삼촌의 '나 항상 그대를'
음정은 늘 불안했지만
중간에 "예~" 하면 환호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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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조카들과 앉아 박수만 쳤는데,
우리 엄마는 꼭 그 시점에 나섰다.

> "자, 다들 조용~히 좀 해봐요."
"우리 막내딸이 노래 좀 해요!"
"... 엄마, 안 해!!!"



결국은 불려 나가서
땀 삐질 흘리며 ‘예쁜 여우’를 불렀고
그 뒤로 **나는 마을 ‘노래 여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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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서엔 항상
막걸리 한 잔 걸치신 아버님들이
'무조건' 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대미.

무대 아래선
청년회장이 튀김 나르고,
아이들은 솜사탕 한 손에 들고 빙글빙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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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엔
명절이 이벤트였고,
사람들이 웃음이었고,
노래 한 곡이 추억이었다.

지금도 추석이 다가오면
그 마이크 스탠드 앞에서
덜덜 떨리던 내 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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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묻는다.
“시골 명절 어땠어요?”
그러면 난 말한다.

> “글쎄요… 노래자랑 하느라
명절인지, 콘서트인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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