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만난 사람들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16화. 종로에서 만난 사람들

긴 겨울방학이 끝날 무렵,
모처럼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 “두 시에 종로, 기억나지? 그 북카페 근처에서 보자.”



그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은 쿵 하고 요동쳤다.

'돌아왔구나.'
'이제 다시 예전처럼, 선배랑 이야기 나누고, 웃고…'
나는 괜히 화장도 더 신경 쓰고
오랜만에 치마를 입었다.

기다리는 버스 안에서,
선배가 무슨 얘기를 할지
혼자 상상도 해봤다.

그리웠다고 말해줄까.
잘 지냈냐고 물어볼까.
그동안의 빈자리를 서로 얘기할 수 있을까.

설렘, 기대, 떨림.
그렇게 두 시가 되기 조금 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선배를 보는 순간,
내 마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선배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
과 친구 셋,
그리고…
처음 보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말끔한 코트,
선배 옆자리에 자연스레 앉아
웃고 있는 그녀.

“혜선아, 왔구나.”
선배는 예전처럼 밝게 인사했지만,
나는 그 목소리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순간,
내가 이 자리에 왜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나보고
“종로에서 만나자”라고 한 거잖아.
그런데 왜…
이게 ‘우리 둘’이 아니라
‘여럿’이 된 거지?

나는 억지로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눈치도 못 챈 척,
당황하지 않은 척,
이 상황이 아무렇지 않은 듯 굴었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작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날, 선배는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다녀온 이야기들을 친구들과 나눴다.

그 여자는
해외 봉사도 같이 다녀온 동행자였다.

“얘가 영어도 잘하고 되게 똘똘해. 되게 좋은 친구야.”
선배가 그렇게 말할 때,
나는 물 한 모금을 넘기며
내 심장이 쿵 꺼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됐다.

내가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그 모든 감정은
한순간에 ‘모른 척해야 할 감정’이 되어버렸다.

그날 종로의 북카페 거리,
찬바람은 매섭게 불었지만
나는 웃고 있었다.

익숙했다.
내 마음을 감추는 일.
그 사람 앞에서만큼은 늘 그래왔으니까.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기억을 뀌메는 사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17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9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5화선배가 없는 겨울, 나를 마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