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선풍기

마루 끝 단편추리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선풍기

성수동 스튜디오 단편 미스터리

막내는 새벽 다섯 시에 깼다.
촬영이 있던 어제 하루 동안 스튜디오는 열 명 넘는 사람들의 숨으로 가득 찼고,
지하 공간엔 땀이 고였고, 피로가 스며들었다.

짐 정리를 마치고 스튜디오 문을 잠근 건 밤 열한 시 반쯤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는 이상한 걸 발견했다.

선풍기.
그가 쓰지 않은 선풍기 한 대가 조명 옆에 놓여 있었다.
무광 실버 바디, 1980년대식 아날로그 다이얼.
바람도 나오지 않고, 꽂혀 있던 콘센트는 빠져 있었다.

“엄마, 이거… 집에서 가져온 거 아니지?”
그는 짐 정리를 도우러 와준 엄마에게 물었고,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난 어제 선풍기 네 대 다 세어봤어. 그건 없었어.”

막내는 선풍기를 빙 둘러봤다.
낡았지만 이상하게도 깨끗했다.
먼지 하나 없는 팬 날개, 그리고 뒤쪽엔 손바닥 크기의 얕은 화상 자국 같은 얼룩이 있었다.

“손, 왜 그래?”
엄마는 막내의 손등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불에 덴 것처럼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어제 누가 조명 고를 때 뜨거운 거 잡았나 봐… 모르겠어, 기억 안 나.”

그 순간, 선풍기 다이얼이 딸깍하고 움직였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둘은 동시에 정지했다.
콘센트는 빠져 있었다.
배터리로 작동할 리도 없는 구형 선풍기.
하지만 방금… 다이얼은 움직였다.

엄마가 낮게 속삭였다.
“얘, 너 어제 스튜디오 문 진짜 잠갔니?”

막내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벽 쪽으로 달려가 CCTV 수신기를 확인했다.
화면은 전날 밤 12시 58분부터 아침 2시 31분까지 검은 정지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전. 분명 전원이 꺼졌던 시간.

그 시간 동안
스튜디오엔 누가 있었을까.
그리고, 저 선풍기는…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막내는 다이얼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그리고 갑자기 떠올랐다.

밤 1시쯤,
잠결에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자기 귀 바로 옆에서 들렸었다.
그건, 꿈이 아니었던 거다.


---

“불을 꺼도, 바람은 남는다.”
— 선풍기 뒤쪽에 적혀 있던 문장.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기억을 뀌메는 사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17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0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