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기록자의 방

마루 끝 단편추리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장르: 단편 추리 / 서스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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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USB를 열지 않기로 했던 다짐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단 한 줄의 쪽지 때문이었다.

> “진짜 타깃은 당신이 아니었어요.
당신은 그저, 가장 아름답게 움직였을 뿐이에요.”



이 말이 도저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고,
그 대상이 ‘나’가 아니었다면—
진짜 타깃은 누구였단 말인가?

나는 결국 책상에 앉아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기다린 지 30초쯤.
폴더 하나가 떴다.
이름은 단순했다.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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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더 안에는 수십 개의 동영상 파일이 있었다.
모두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었고,
첫 파일의 날짜는 정확히 6개월 전.
즉, 그 사람이 이 건물 어딘가에서 '관찰'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나는 손을 떨며 3일 전 파일부터 재생했다.
영상은 무음이었다.
누군가가 삼각대를 고정한 채
반쯤 열린 새시문 사이로 거실 풍경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움직이는 ‘나’가 있었다.

밥을 먹고
책을 읽고
때로는 멍하니 앉아 창밖을 보는 모습.

그리고 그다음 영상엔
내가 새시문을 닫고 잠드는 장면이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는 화면 속에서
나는 내가 아니었다.

**

두 번째 폴더의 이름은
이상하게도 낯익었다.

[projection_A]

열자마자,
놀라운 사실 하나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건 단순한 관찰이 아니었다.
모든 피사체의 행동 패턴이 수집되어 ‘분석’되고 있었던 것.

> 201호: 오후 6시 30분~6시 47분 - 식사
301호: 주 3회 야간 외출 - 수요일 고정
101호: 23시 정지 습관, 오른손 손가락 꼼지락 반복



기록은 인간의 행위를 마치
무생물처럼 분해하고,
마치 ‘무대 위 캐릭터’처럼 정리하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그 분석 하단에 붙어있던 태그였다.

[시뮬레이션 시나리오 설계 가능]

이건 단순한 감시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이 건물의 사람들’을
가상의 프로그램처럼 통제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언젠가 느꼈던 **“데자뷔”**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연출’ 안에서,
우리는 반복되는 루틴과 시선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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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USB 관련해서 진전이 좀 있습니다.”

경찰은 내게 작은 흑백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이 사람, 본 적 있습니까?”

사진 속 남자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가느다란 안경,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운 스웨터.
하지만 나는 그 얼굴을 딱 한 번,
‘공동 현관 CCTV’ 속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남자,
3층 세입자의 지인이라며
짐을 옮기던 그 사람이었다.

“누구죠…?”

“원래는 모 기술연구소에서 AI 패턴 시뮬레이션 개발을 하던 사람이에요.
3년 전에 퇴사한 후, 갑자기 사라졌죠.”
경찰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자신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실제 사람들에게 적용해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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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울을 덮었다.
창문은 이미 며칠 전부터 봉인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젠 거울보다
내 안의 ‘움직임’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가장 아름답게 움직였던’ 나는
정말 나였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설계한 움직임 안에서
단지 ‘예쁘게 걸린’ 피사체였을 뿐일까.

**

며칠 후,
건물 1층 우편함에 작은 편지 하나가 남겨져 있었다.
봉투에는 이름도 없고, 내용은 단 한 줄 뿐이었다.

> “14번째 기록, 이제 멈춥니다.”



**

나는 갑자기 이해됐다.
‘15번째’는
이제부터 내 차례라는 뜻이었다.

다음 타깃은,
관찰자가 아닌
기록자가 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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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16화: 마루 끝의 실험실)
잊힌 고시원 한 방.
기록자가 남긴 노트북이 발견되고, 그 안엔 ‘예상 행동 시뮬레이션’과 다음 타깃 리스트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리스트엔 주인공의 **‘본명’**이 아닌,
전혀 다른 이름이 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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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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