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노란 서류봉투의 행방

마루 끝 단편추리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 노란 서류봉투의 행방 -

문밖에 놓인 노란 서류봉투는 누가 봐도 누군가 일부러 “보이게” 두고 간 흔적이었다. 문틈을 따라 번진 낡은 먼지가 봉투 아래 깔려 있었고, 문 손잡이 쪽 바닥에는 잔뜩 밟힌 운동화 자국이 보였다. 대문을 나선 사람이 다시 돌아와 두고 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날 밤까지는 없었어요. 제가 새벽 세 시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었거든요.”

주인공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집어 들었다. 앞면엔 아무런 글씨도 없었다. 뒷면의 끈을 풀자, 종이뭉치가 하나, 그리고 그 사이에 끼워진 낡은 흑백 사진 한 장이 튀어나왔다. 사진 속엔 다섯 명의 아이들이 교복 차림으로 운동장에 서 있었다. 배경으로는 낡은 학교 건물과 철제 농구대, 그리고 뒤편에 어렴풋한 그늘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띈 건, 사진 오른쪽 아래에 적혀 있는 날짜였다.
1987.05.14.

"1987년…?"

그 날짜는 어느 피해자의 실종일과 정확히 일치했다. 14일. 그날은 비가 내렸고, 학교 근처에서 사라진 아이가 있었다. 하지만 사진 속 아이들 중 누가 사라진 아이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모두 같은 제복을 입고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만 사진의 가장자리가 흐릿하게 번져 있었고, 한 아이의 얼굴엔 동그랗게 펜으로 둘러싼 표시가 있었다.

“당신, 누구야…”

사진에 표시된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주인공은 등골이 싸늘해졌다. 그 아이는 며칠 전, 집 앞 꽃시장 골목에서 만났던, 익숙한 얼굴의 ‘누나’였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이모라고 들었던 이름, “장미화.”

장미화라는 이름은 오래된 수사기록에서도 몇 번 언급된 바 있었다. 실종 사건 이후로 자취를 감춘 인물, 그러나 주변 인물들에 의해 ‘단순한 이사’로 기록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밤, 낯선 음식을 사 들고 고양이 밥을 주며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뭔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그 말투와 억지 미소.

“장미화, 당신은 왜 이 사건 속에 숨어 있는 거죠?”

주인공은 봉투 안의 종이뭉치를 더 살폈다. 그것은 오래된 상담일지였다. 복사된 흔적이 선명한 A4용지에는 심리상담사 이름과 상담 내용이 정리돼 있었다.

“14세 여아. 과거 외상경험 반복 호소. 특정 인물 등장 시 호흡 곤란. 같은 꿈 반복.”
“반복적으로 그리는 그림: 큰 나무와 그 아래 검은 그림자.”
“마지막 상담일: 1987년 5월 12일.”

주인공은 숨을 고르며 마루 끝 책상에 펼쳐진 자료들을 다시 정리했다. 사진, 일지, 그리고 과거 기사.
그녀가 마주한 건 단순한 실종이 아니었다.
지워졌다고 믿었던 이름들, 기록에서 사라진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다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 창밖에서 들리는 낯선 발자국 소리에 주인공은 몸을 굳혔다.
익숙한 발소리였다.
지나치게 규칙적인 걸음,
마치 일부러 소리를 내는 듯한 무게감.

스르르— 현관의 우편함이 움직였다.

철컥.

무언가 밀어 넣는 소리.
주인공은 천천히 다가가 우편함을 열었다.
안에는 또 다른 사진 한 장.
이번에는 컬러 사진이었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흐릿하게 찍혀 있었고,
사진 아래엔 익숙한 주소가 적혀 있었다.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


---

#단편추리 #마루끝일기 #노란 봉투 #실종사건 #1987년의 비밀 #사진 속단서 #기억 속인물 #위험의 시작 #장미화의 비밀


---

다음화 예고 – 17화

〈검은 우산을 쓴 여자〉
장미화라는 이름을 추적하던 주인공은 뜻밖의 장소에서 그녀와 다시 마주친다. 그러나 그 여자가 정말 ‘장미화’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그녀처럼’ 꾸며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동시에, 오래된 사진 속의 ‘또 다른 인물’이 살아 있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사건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마루 끝 골목 어귀에서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검은 우산을 든, 낯선 여자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기억을 뀌메는 사람···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174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9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5화제15화: 기록자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