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흔들리는 시선들

마루 끝 추리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17화. 흔들리는 시선들

“왜 그 사진을 보낸 거죠? 당신이…”

연주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낮았고, 떨림은 억눌러진 채로 묻혀 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단단히 쥔 채, 한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진 속에는 낯익은 얼굴과, 어릴 적 연주의 가족사진 속 한 남자—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던 ‘그 사람’—의 실루엣이 겹쳐 있었다.

무시할 수 없는 유사성.
그러나 연주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 사진이 진짜일 리 없었다.
그 사진을 보낸 사람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신뢰한다고 생각했던 사람… 그 사람이 왜?’

“연주야, 괜찮아?”

강우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문고리에 손이 닿으려는 소리가 들릴 때쯤, 연주는 간신히 말했다.

“문 열지 마.”

침묵.
그 뒤에 묻혀오는 가벼운 숨소리, 그리고 느릿한 발걸음 소리.
강우는 물러났고, 연주는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진은 단순했다.
골목 어귀, 허름한 폐가 앞에서 찍힌 중년의 남자.
그리고 그 뒤, 흐릿한 피사체로 포착된 또 다른 사람.
문제는, 흐릿한 그 실루엣이 어릴 적 아버지의 뒷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는 것.
연주는 그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그날 이후 꿈에서도 찾아오지 않던 과거의 단편이…
갑작스럽게, 부도심처럼, 그녀의 뇌리를 침투했다.

어릴 적, 문득 사라졌던 아버지.
어느 날 돌연 집을 나간 뒤, 한 통의 편지조차 남기지 않았던 남자.
연주는 오랫동안 ‘그 사람’을 부르지도, 떠올리지도 않았다.
기억의 방에 스스로 자물쇠를 채워둔 채, 그 방 앞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리고, 왜 그 사람이… ‘이 사건’과 연결되는 걸까?


연주는 조심스럽게 강우를 피해 집을 빠져나왔다.
몸이 무거웠다.
단순히 사진 때문이 아니었다.
강우에 대한 감정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왜 이 사진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건 단순한 우연이라고 믿기엔 너무도 이상했다.
어쩌면, 강우는 이 모든 퍼즐의 일부였을지도 모른다.

연주는 그날 밤, 사진이 찍힌 폐가를 찾아갔다.
GPS 좌표는 명확했고, 도로에서 멀지 않은 오래된 마을이었다.
이름 없는 골목, 낡은 벽돌 건물, 무너진 담벼락.
사진 속 풍경이, 눈앞의 현실과 겹쳐졌다.

연주는 호흡을 가다듬고 폐가의 문을 밀었다.
문은 예상보다 쉽게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누군가 있었다.

“왔군.”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익숙했다.
연주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남자는 나서지 않았다.

“겁내지 마. 널 해치러 부른 건 아니야.”

그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 연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건…
그녀가 가장 두려워했던 얼굴이었다.

“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넌 지금 진실을 보러 온 거야.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나?”


마음이 부서질 것 같은 고요 속에서 연주는 숨을 삼켰다.
머릿속에서 어떤 균열이 났다.
그녀가 견고하게 쌓아온 모든 기억들이—그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오래전 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어릴 적, 자신이 몰래 본 어떤 ‘사건’.
그 사건을 가족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잊은 줄 알았던—그 장면.

“당신이 그때… 그 사람이었나요?”

“아직은 말하지 않겠어. 하지만 곧, 네가 기억하게 될 거야.”

그 남자가 뒤돌아 사라질 때, 연주는 멈춰 선 채 눈을 떴다.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제, 진짜 위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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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끝단 편 추리 #추리소설 #심리서스펜스 #기억의 균열 #폐가의 진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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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18화. 잃어버린 증언
어린 시절 연주가 마주쳤던 밤의 진실, 그날 목격자는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그날’을 기억하는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진실을 말하는 자는 누구이며, 침묵을 지키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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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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