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마루 끝에서 들려오던 숨소리

마루 끝 추리

by 기억을 뀌메는 사람 황미순


마루 끝에서 들려오던 숨소리

마루 끝에 발을 디딘 순간, 연주의 온몸이 굳었다. 오래전 그 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누군가의 숨소리. 그것은 분명 사람의 것이었다. 짐승이 내는 소리와는 달랐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들리던 숨의 리듬. 그날 연주는 마루 끝에서 몇 걸음 더 내딛지 못하고 뒤돌아섰었다.

그때부터였다. 연주는 마루 끝을 피했다. 낮에도, 밤에도, 마루 끝에는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어린 마음속에 새겨진 의문과 두려움은 자라면서 잊힌 듯했지만, 몸이 먼저 기억해 버린 장소는 여전히 그녀에게 ‘무언가’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모든 단서들이 엉켜 한데 모이는 느낌이었다.

지하 스튜디오 안에 세워둔 오래된 책장 뒤편에서, 연주는 또 다른 낡은 상자를 발견했다. 할머니의 이름이 적힌 편지봉투와 함께, 아버지가 적어둔 작은 수첩. 수첩의 글씨는 흐트러져 있었지만, 곳곳에 '마루 끝', '밤', '숨소리', '경계' 같은 단어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연주는 마치 하나의 조각 맞추기를 하듯, 수첩과 자신의 기억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날, 왜 아버지는 마루 끝에서 울고 있었을까?’
‘누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걸까?’
‘왜 연주를 보면 자주 술에 취해 있었던 걸까?’

수첩의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날, 내가 지켜야 했던 건 연주가 아니었을까.”

순간, 연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버지가 어른들의 그늘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지키려 했다는 걸,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지하실 천장의 불빛이 깜빡거렸다. 연주는 오래도록 스튜디오 안에서 나오지 못했다. 수첩을 손에 쥐고, 그 안의 문장들을 가만히, 천천히 다시 읽었다.

아버지는 연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아버지의 자리를 기억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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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끝에서 바라본 유년의 기억을 꿰메어 글을 씁니다.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꿰메어 언젠가는 나만의 ‘토지’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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